가문의 토끼띠 이야기
김철이
토끼는 예로부터 유순하고 꾀가 많아 지혜와 슬기의 표상으로 불린다. 판소리계 소설인 별주부전(鼈主簿傳)을 살펴보면 토끼가 왜 꾀가 많으며 지혜와 슬기의 표상으로 불리는지 쉽게 접할 수 있다. 별주부전에서 용왕은 자신의 병을 치료할 특효약인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자라를 육지로 보낸다. 자라는 갖은 감언이설로 토끼를 회유해 간신히 용궁으로 모셔가듯 데리고 간다. 토끼는 뒤늦게 자라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간을 노리는 자가 하도 많아 평소에는 누구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산속 깊숙이 숨겨놓고 다닌다는 터무니없고 교묘한 핑계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판소리계 소설 속 토끼의 순간적 모습이지만 토끼가 얼마만큼 꾀가 많고 연민한 동물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토끼는 강한 번식력으로 번성과 풍요의 상징으로 대두된다. 또한 달 속에 생존한다고 전해져 오는 이상세계의 신령스러운 짐승으로서 달과 동일시되며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동물 중 최장의 장수 동물로 상징화되어 있기도 하다.
토끼띠는 묘(卯)의 넉넉한 심신의 원기를 받아 원만한 기풍과 자애로운 정을 지녔다. 그러므로 토끼띠생은 세상 뭇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는 느긋하고 온순하고 인자한 기품과 성질을 소유한다고 전해져 온다. 아울러 착한 성질을 타고난 이상주의자 적이며 심미적 감수성이 남달리 뛰어나 예술가적 기품과 성질을 지녔으며 성품이 내성적이고 매사 완벽성을 추구하여 나무랄 곳 드문 안목과 학자적 기질을 지닌 이가 대부분이다.
상냥하고 지적인 자세를 지니므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으며 신뢰 또한 두텁다. 한편 조용하고 온순해 보이는 성격의 이면에는 강한 의지가 거의 자기도취적인 자신감도 지니고 있어 상상력을 과도하게 발휘하는가 하면 지나치게 예민한 경향도 본성으로 지녔으므로 때에 따라 냉정한 인품을 지닌 이로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일을 눈치 빠르며 능숙하고 슬기롭게 처리하는 솜씨인 재치가 있으며 예능 계통의 재능을 지녔지만 복잡하게 사는 것보다 단순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다툼을 싫어하는 성격이며 장래 희망과 꿈에 비해 다소 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고 꾸준히 어떤 일에 관해 한 우물만 파지 못하는 성향과 더불어 여러 우물을 파는 성향도 적지 않게 지녔다 할 수 있다. 아울러 어떠한 일을 시작했을 때 마무리하고자 하는 의지와 당면한 문제에 맞서는 담력이 미흡하다 할 수 있음이다.
토끼의 본성은 온화하고 평화로운 동물임은 틀림이 없다. 토끼란 동물은 결코 생존해 있는 다른 생명체를 해치지 못한다. 육식이 아닌 채식 동물이라는 본성이 지닌 신성성(神聖性)을 드러내지만, 이태백(李太白)이 시로 읊던 달 속에 방아를 찧는 옥토끼 이미지 그 자체가 평화를 표상(表象)한다. 반면에 그 무엇보다도 토끼의 쭝긋한 두 귀는 주변 소리에 과민하며 늘 두려움에 떠는 것 같으며 붉고 큰 눈은 육식동물들에 의한 피해자적 입장을 잘 입증(立證)해준다.
대부분의 우화 속 토끼들의 이미지를 살펴본다면 언제나 한결같이 피해망상에 떨고 있는 자신들의 생활습성을 반성하고 이른바 단합대회(團合大會)를 개최하여 담대한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던 중 가을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낙엽 소리가 바스락하고 떨어지자 하나같이 혼비백산하여 죄다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토끼는 지혜의 동물이다. 겉모습으로만 볼 때면 무척 경망스럽게만 보이지만 불시에 발생할지도 모를 만일의 위난(危難)에 대비하여 남이 모를 장소에다 세 곳의 굴을 파 놓을 만큼 치밀한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토끼의 뛰어난 교지는 그 유명한 별주부전에서 능히 접할 수 있는데 꼼짝없이 생죽음당할 곤경에 빠졌음에도 상황에 굴하지 않고 용왕뿐만 아니라 용궁 내 모든 일원을 교묘히 속이고 간을 가지고 오겠다며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에서 유유히 도망쳐 나온 토기의 기지야말로 절품이 아닐 수 없고 만물의 영장인 우리도 배워 익혀야 할 기지(機智)가 아닌가 싶다.
이러하듯 성품이 착하고 유머가 풍부해서 예능적 재능이 많으며 앞길을 막는 장애물 또한 간단히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와 슬기를 지닌 유아가 많이 태어난다는 흑토끼 해인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우리 가문의 토끼띠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 가문엔 모친, 숙부, 형님, 내자 등 네 사람의 가족 구성원이 토끼띠인데 모친과 숙부님은 동갑내기 정묘년(丁卯年)생이고 형님은 신묘년(辛卯年)생이며 내자는 계묘년(癸卯年) 생이다. 외부에서 상상하기엔 같은 띠를 타고났으면 매사가 찰떡궁합이 아닐까 할지 몰라도 일치성(一致性)은 가물에 콩 나듯 하고 불편성(不偏性)은 장마에 논둑 터지듯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문밖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정도가 일상에서 소소한 의견 충돌이 비교적 잦았다는 것이다.
모친께선 토끼띠 본성 중 예술적 기질을 비교적 많이 지닌 반면에 완벽성을 추구하셨으며 소녀기엔 문학소녀셨고 노래도 기성 가수 뺨칠 정도로 곧잘 부르셨다. 숙부님 또한 완벽주의자적 성향도 지니셨지만, 대조적으로 게으름성도 지니셨다. 반면에 우둔할 정도의 성실과 충성심을 지녀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로서 여러 차례 훈장을 수여하기도 하셨다. 형님은 누군가 겉옷을 벗어달라고 할 시 속옷까지 벗어줄 정도로 인품 좋다는 칭송을 듣곤 했지만, 욕심 없이 세상을 쉽게 살려는 성향이 짙어 모친과 숙부님으로부터 사랑의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예능의 재능을 지녀 노래 실력과 악기 다루는 손재주가 보통이 넘었다. 내자는 특별한 재능은 드러나지 않으나 지나치게 예민한 경향도 본성으로 지녔으므로 때에 따라 냉정한 인품을 지닌 이로 오해를 살 때도 없진 않지만, 본성은 온순하고 따뜻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인품을 지녔다. 넷 중에 서로 성향이 가장 잘 맞는 이들은 모친과 내자였는데 “만나자 이별”이란 속담처럼 내 결혼한 지 일 년여 남짓 양친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셨으니 내자 “왈” 허전한 가슴 아쉬움만 쌓인단다.
만약 하늘이 내게 다시금 태어날 수 있는 특전과 가족의 연을 택할 수 있는 특전을 부여해 주신다면 한순간 망설임 없이 이들의 아들, 조카, 아우, 남편으로 태어나 현세에서 그들에게 받았던 드높은 사랑과 은혜를 몇 곱절 되돌려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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