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엄마의 베갯잇

松竹/김철이 2022. 11. 15. 09:09

엄마의 베갯잇

 

                                                                      김철이

 

 

어떤 이와 연을 맺고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관한 조언으로 “그가 없는 긴 생을 사느니 그와 함께하는 짧은 생을 택하겠어요. 그가 없으면 사랑도 없으니까요.”라는 비비안 리의 명언이 돋보이듯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나날이 급속도로 발전해 나아가는 세상 걸음을 따라 때로는 종종걸음으로 때로는 허깨비걸음으로 뛰고 걷느라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물건 중에 그 소중함을 잊고 생활하는 사례가 많은데 한 초등학교 교사의 일상생활 체험담을 통해 무심히 지나친 우리의 일상을 되돌려 반성하며 어떤 인연이 남긴 그 무엇이 가장 소중한 존재인지를 평생을 두고 영혼 다이어리에 새겨보도록 하자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첫날 오랜만에 반가운 제자들의 모습을 보자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물건에 대해 애착심을 가질까 하는 궁금증이 발동한 도심지의 한 초등학교 담임 교사가 같은 반 아이들에게 특별한 숙제를 내주었다.

 "얘들아! 방학 동안 너희 생각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싶어 내일 숙제는 너희 각자의 집안에서 가족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아끼는 물건을 한 가지만 정성껏 잘 그려 오는 것이니 잘들 그려와야 해"

 담임 교사는 아이들이 어떤 물건들을 그려올지 내심 궁금했다.

 

다음 날 아이들의 숙제 발표 시간이 되었다. 첫째 아이가 교탁 앞으로 걸어 나와서 자신이 그려온 그림을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이건 우리 아빠가 평소에 장난감처럼 치는 통기타인데요, 아빠가 기타를 치면 엄마는 기타 연주에 따라 노래를 하십니다. 이 기타는 우리 엄마 아빠가 소중하게 여기시는 악기라서 우리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주므로 제게도 가장 소중한 물건이랍니다."

 또 다른 아이가 그림을 들고나와서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다른 사람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하는 아주 귀중한 청자입니다. 우리 가문의 가보이니 제게도 가장 소중한 물건입니다."

 

 이렇게 여러 아이의 그림들을 보니 사진작가인 큰 형님의 값진 고급 카메라를 그려온 아이, 아빠가 끔찍이 여기는 외제 승용차를 그려온 아이, 엄마가 극성스러울 정도로 아끼는 여러 가지 보석 반지를 그려온 아이 등 아이들이 그려온 그림 속에는 무척 다양하고 소중한 물건들이 그득 했다.

 

 한데 끝으로 그려온 그림을 발표할 아이가 자신이 그림 그려온 도화지를 친구들 쪽으로 펼쳐 보이자 반 친구들이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박장대소로 웃기 시작했다. 아이가 들고 있는 도화지 속엔 누군가가 베다 속을 빼낸 베갯잇 하나만이 덩그러니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폭소를 터뜨리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발표를 이어갔다.

 

 "이건 우리 엄마가 살아생전 항상 베고 주무시던 베개의 베갯잇인데요. 엄마는 작년 말미에 앓던 심장병이 악화하어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안 계세요. 그래서 우리 엄마는 더는 이 베개를 베고 주무실 수가 없어요. 하늘나라에선 아프지도 않고 이 베개보다 더 좋은 베개를 베고 주무실 테니까요. 그래도 우리 아빠는 엄마가 살아생전 사용하셨던 다른 물건들과 베갯속으로 사용하던 메밀껍질은 죄다 불살라 엄마랑 함께 보내드렸지만, 이 베갯잇만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셨어요. 게다가 이 베갯잇을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와 똑같이 아빠의 베개 옆에다 나란히 놓고 주무시곤 해요. 베갯속을 그대로 넣은 채 두면 썩거나 냄새가 날 수도 있고 밤마다 엄마가 찾아와서 베갯잇 속에다 엄마가 아프진 않은지, 고생은 하지 않은지, 살고 계신 하늘나라 소식들을 채워 넣으라는 뜻에서 베갯속은 빼낸 채 말이에요. 우리 아빠께는 이 베갯잇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에요. 제게도 마찬가지지만 말이에요. 저는 아빠의 침상에 놓인 엄마의 베갯잇을 볼 때마다 엄마가 많이 그리워져요. 간혹 친구들이 엄마와 다정히 길을 걷는 모습과 마주칠 때면 집으로 달려와 아빠의 침대 위에 주인을 잃은 채 마냥 우두커니 놓여있는 엄마의 베갯잇을 안고 여러 번 울기도 했어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시리라 믿지만, 오늘 같은 날은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아이는 목이 메어 더는 차마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천진난만 떠드는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던 교실 안의 분위기는 금세 숙연해졌고 아이의 짝꿍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옆 걸상에 앉아있던 아이가 또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메아리가 온 산에 울려 퍼지듯 순식간에 교실 안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담임 교사도 콧날이 시큰해졌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아이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아이를 꼭 감싸 안아주면서 다른 아이들을 두루 살피고는 조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네가 그려온 이 그림은 세상 무엇보다도 제일 값지고 소중한 보배로구나!"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던 아이들, 소리 없이 얼마나 눈물을 흘렸든지 눈물로 온통 얼굴이 얼룩진 아이들이 죄다 일어서서 손바닥에 번갯불이 일도록 박수갈채를 보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 말이 있듯이 물질이 범람하는 시대에 태어나서 고생이란 단어로만 듣고 자란 이 시대 자녀들이 올바른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생에 있어 무엇이 소중한 것이고 그 소중한 것을 아끼는 모습을 솔선수범하여 보여주는 생활 습관이 자녀교육관에 있어 크나큰 가르침이 될 것이다. 부모의 유산을 탐내다 형제간에 아귀다툼을 일삼는다든가 연로하신 부모를 쓰레기 내다 버리듯 인적 드문 산속이나 무인도에 버리는 패륜을 서슴잖는다든가 맞닥뜨린 현실이 버겁다는 이유 하나로 갓 난 자식을 헌신짝 버리듯 한다든가 향락에 빠져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 피붙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다든가 하며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일찌감치 헐값에 팔아먹은 이 시대를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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