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탱자나무 울타리

松竹/김철이 2022. 9. 21. 09:06

탱자나무 울타리

 

                                                                          김철이

 

 

 

 흔히들 부모는 자식의 울타리라고 한다. 내 나이 예닐곱 시절

 “부모는 자식의 울타리”라는 뜻에 관해 며칠을 두고 부모님께 번갈아 가며 수십 차례 질문했던 적이 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질문을 한다 싶어 엉뚱하다는 생각과 당돌하다는 생각이 드셨든지 처음엔 건성건성 대답해 주셨는데 내가 워낙 한 가지 궁금증에 꽂히면 그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꼬치꼬치 물으며 파고드는 성격이라 두 분이 며칠을 두고 내 나이에 걸맞은 대답 해주어야 하나를 놓고 고심하던 중 하루는 아버지께서 퇴근 걸음에 온화한 얼굴빛을 띠며 현관문을 들어서셨다.

 

아버지께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날 불러 무릎에 앉히셨다.

“철아! 너, 며칠 전에 부모는 자식의 울타리라는 뜻에 관해 물었지?”

“예!”

“이 말의 뜻은 이 아버지도 너무 어려워 설명해 주기 쉽지 않구나. 대신 그 답은 너 스스로 알아낼 수 있단다.”

“어떻게요?”

“앞집 욕쟁이 아줌마네 누나와 형들이 몇이니?”

“여덟 명요.”

“그렇지 여덟 명이지. 거기에 네가 알고 싶어 하는 답이 있는 거야. 그러니 장차 네가 자라면서 앞집 누나와 형들이 어떻게 아저씨 아줌마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는지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레 지금 네가 궁금해하는 답을 알 수 있을 거야”

 

 그랬다. 자식을 많이 둔 어버이에게는 근심이나 걱정이 끊일 날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뜻으로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두서넛 살 때부터 장년기까지 이웃하며 지켜본 욕쟁이 아줌마네 가정사를 두루 살펴볼 때 위의 속담은 그 욕쟁이 아줌마네를 빗댄 것 같았다. 당시 연산2동 가구 이백여 호 가운데 담장을 쳐놓은 집도 몇 안 됐지만,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쳐놓았던 집도 욕쟁이 아줌마네뿐이었다.

 

당시 연산2동 주민들은 그 집을 두고 일명

“탱자나무 울타리 집”

“욕쟁이네”로 불렀는데 동네 주민들의 인식에는 겉으로 느껴지는 그 집의 형상이나 수시로 걸쭉한 욕설로 친근감을 드러내는 그 집 안주인의 평상시 생활 모습으로

“탱자나무 울타리 집”

“욕쟁이네”로 불렸던 걸로 알고 있었지만, 그 집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탱자나무 울타리 집”

“욕쟁이네”로 동네 사람들의 기억에 인식되기까지는 숨은 사연이 많았다.

 

 하루는 우리 아버지와 탱자나무 울타리 집 아저씨가 아저씨네 대청마루에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다 무심코

“형님! 다른 자제 다 두고 왜 탱자나무로 집 울타리를 치셨어요?”

했더니 아저씨 껄껄껄 웃으시며

“첫째는 다른 자제를 살 돈이 없었고 둘째는 자네도 잘 알다시피 우리 애들이 좀 별나나?”

“철부지 어린애들은 매 마찬가지겠지만 개새끼와 사람의 자식은 사나워야 잘 큰다고 하지 않습니까.”

“별나도 보통 별나야지”

“애들 별난 것과 탱자나무 울타리와 무슨 연관이라도?”

“있지, 있고말고”

라고 하시며 막걸리 사발을 들어 단숨에 마신 후

“자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 알지?”

“예! 알지요.”

“내가 바로 가지 많은 나무였다네”

아버진 그제야 아저씨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아차리곤 아저씨의 야윈 어깨를 두 팔로 꼭 감싸 안아드렸다.

 

전쟁 직후라 국내 서민층의 살림살이가 몹시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특히 아저씨네는 아저씨가 특별한 직업이 없었던 탓에 아주머니가 집에서 밀주를 담가 친분이 있어 드문드문 찾아오는 이들에게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이었다. 그런 넉넉지 못한 처지에도 슬하의 여덟 명의 자녀에게 호의호식은 못 시켜도 끼니만큼은 굶기지 않고 큰 병치레하지 않고 자라게 해 주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귀신도 뚫지 못한다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쳐서 자녀들을 외부의 갖가지 위험 요소로부터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두 양주(兩主)의 보호 본능의 기운이 너무 강했든지 7남 1녀의 자녀가 하나같이 남들보다 강한 성품으로 자라며 동네 골목대장 자리를 물려주고 물려받으며 타인의 신상의 해를 끼치는 행위가 발생하는가 하면 크고 작은 말썽의 불씨를 일으켰던 통에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이고 편히 쉴 틈이 드물었다.

 

탱자나무 울타리 집 첫째 아들은 누구보다 강인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 덕에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다 중퇴하고 옛 주한 미군 부산기지 사령부(하야리아 부대) 근처에서 주한 미군을 대상으로 구두닦기를 하며 귀동냥으로 얻어 익힌 영어 실력과 틈틈이 익힌 다방면의 지식으로 장차 하야리아 부대 내 소방 과장이라는 직위까지 올라 부모님 봉양은 물론 동생들의 학비를 떠맡는 둥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해냈으며 훗날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한국인 타이피스트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사를 지어냈다.

 

탱자나무 울타리 집 둘째 아들은 가문에 없는 끼를 지녀 불법 댄스교습소를 드나들더니 부부의 인연이 닿았든지 부잣집 외동딸을 배후자로 삼았으나 아내의 불임으로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하고 그냥저냥 살았으며 삼녀이자 탱자나무 울타리 집의 고명딸은 밀주 집을 운영하느라 바쁜 어머니를 도와 가사를 도맡아 하다 절친의 소개로 고등학교 교사를 남편으로 맞았으나 어린 시절 앓았던 심한 영양실조가 원인이 되어 아기를 낳지 못한 채 유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에 탁아소(어린이집)를 운영했었고 넷째 아들은 지능지수가 여니 사람들보다 조금 떨어졌던 탓에 제대로 된 직장 한번 갖지 못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했었다. 팔 남매 중 가장 착하고 여린 천성을 지닌 넷째 아들은 탱자나무 울타리 집 양주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탱자나무 울타리 집 다섯째 아들은 형제 중 가장 공부 욕심이 많았던 덕에 부모 뒷받침으로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교까지 독학으로 마친 뒤 연애 중이던 여성의 도움으로 그 여성과 함께 영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십여 년 후 함께 유학길에 올랐던 여성과 결혼도 하였고 물리학 박사가 되어 귀국했었다. 여섯째 아들은 형제 중 가장 게으르고 낙천적인 성품을 타고났던 탓에 중학교를 중퇴한 후 밥벌이할 일터를 구하지 못한 채 동네 뒷골목을 어슬렁대던 놈팡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동네 안팎에다 불안감을 조성하며 시간을 죽여가던 중 천지가 도왔는지 요행히 도 천사의 마음씨를 지닌 부잣집 무남독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부잣집 무남독녀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후 자동차 정비 기술도 배웠고 자동차 정비 기술 자격증을 취득하여 장차 처가가 될 부잣집의 도움으로 자동차 정비공장도 지니게 되었으며 부잣집 무남독녀와 결혼하여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

 

탱자나무 울타리 집 일곱째 아들은 유년 시절부터 공부엔 관심이 없고 온통 운동에만 정신을 빼앗겨 공을 차고 다니느라 없는 살림에 운동화 한 켤레 사주고 돌아서면 떨어진 운동화가 돈 달라고 입을 벌리곤 했는데 난다 긴다 할 정도의 스타 스포츠인은 못됐지만, 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축구 선수로 활약하더니 한 우물을 팠던 덕에 고등학교 교사로 채용되어 몇 년 후 같은 학교 여교사와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루었다. 탱자나무 울타리 집 막내아들은 유년 시절부터 타인들에 비해 노래하는 재주가 남다르더니 가수가 되겠다며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출한 뒤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다가 홀연히 나타나 가수 공개오디션을 통해 가수로 활동 중이라며 한 차례 동네 어른들을 모셔놓고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한 가정 형제들의 이러한 각양각색의 삶의 희로애락과 탱자나무 울타리 집 양주(兩主)의 삶을 지켜보며 왜 부모를 자식들의 울타리라고 하는지도 저절로 깨닫게 되었고 부모는 자녀들의 인생 진로에 관해 큰 역할을 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기만 하여도 자식들에겐 잡귀(雜鬼)도 갖가지 병마(病魔)도 뚫지 못하고 침범하지 못하는 든든한 탱자나무 울타리가 된다는 인지상정을 깨달은 바 있는데 굳이 신앙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의 부모로 누구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행위는 모름지기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부모와 자식이 된 도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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