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인(乞人)과 천사(天使)
김철이
상전은 미워하고 괄시하여도 살 수 있으나 같은 신분인 종끼리 미워하고 괄시하면서는 살 수 없음을 이르는 말로 “상전은 미고 살아도 종은 미고 못 산다.”라는 명언이 있는데 인생의 텃밭에 드높은 영양소를 부여할 교훈을 몸소 실천하는 한편 덧없는 인생의 여정에서 천만금을 주고도 못 살 값없는 참사랑을 나눈 이들의 참삶을 글로 옮겨 소개하고 새로이 열어갈 새봄의 문전에서 세상 뭇 인생 생에 표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삼십여 년을 도심지 길섶에서 구걸하며 생계를 이어온 걸인 청년이 있었는데 그 청년은 아동기 시절 자신을 세상에 낳아준 부모 슬하에서 빈손으로 내쫓긴 선천성 뇌병변 장애인이었다. 그 청년은 정확히 듣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중복으로 지닌 중증의 언어장애 탓에, 당면한 상황을 타인에게 전달하기엔 거의 불가능했으므로 구걸하는 행위 외에는 생업에 연관된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도심지 번화가 길섶에 퍼질러 앉아서 온종일 구걸한 돈이 사오만 원 남짓 되었지만, 청년의 허기진 배는 달랠 길이 없었다.
매번 허기를 달래려고 음식점 문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곧장 문밖으로 내쳐지기 일쑤였다. 구걸이 아니라 당당한 손님의 자격으로 돈을 내겠다 해도 식당들은 죄다 하나같이 청년에게 음식을 팔지 않았다.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면한 상황을 설명하려 할 때마다 온몸이 절로 떨리고 뒤틀리는 건 물론 수저로 음식을 떠서 먹으려고 입으로 올라가려 한들 입속에 제대로 들어가는 양보다 입 밖으로 흘리는 양이 더 많았던 탓에 주변을 지저분하게 만들어 영업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청년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하루도 완전한 허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토록 문전박대를 당해 서럽고 배고팠던 청년은 이천 년 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이 배불리 먹인 예수의 기적을 염원하면서 성경 한 권을 통째 외우기도 했다. 청년은 삼십 년간 반복되는 걸인의 생활에도 성당 주변을 하루도 떠나본 적이 없는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두터운 신앙심도 육체의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일상사가 이렇다 보니 결혼이란 공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자신을 향해 자물쇠를 굳게 잠근 세상에서 청년이 찾아가 허기진 배를 채울 곳은 술과 간단히 요기가 될만한 안줏거리를 곁들여 여성들이 돈을 받고 성행위를 해주는 윤락업소, 뿐이었다. 청년이 생각하기에 자신도 돈만 내면 비장애인들처럼 문전박대당하지 않고 고픈 배를 불릴 수 있는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청년은 윤락촌을 찾아가 어울리지 않는 비싼 안줏거리를 주문했다. 아울러 윤락녀더러 안줏거리를 손수 먹여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절박한 사생활 탓에 윤락녀의 길을 걸어야만 했고 돈이라면 독극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손수 들이킨다는 한 윤락녀가 음식상을 차려 들고 왔다. 청년과 마주 앉은 윤락녀는 청년에게 갖가지 음식을 골고루 떠 먹여주기 시작했다. 청년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인간다운 대접에 감격하여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야박하기만 하다며 손사래 쳐왔던 세상이 이다지도 아름다울까! 미천한 날 내쫓지 않고 마주 앉아 갖은 음식을 먹여주는 이 여인은 분명히 천사일 거야 하는 생각이 끊임없었다. 청년은 감동하여 윤락녀를 바라보며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처… 천사가 처… 천국에 사… 사는 게… 아… 아니라 다… 당신이 바… 바로 처… 천사야…”
순간 윤락녀는 화들짝 놀랐다. 한 몸에 만인의 천대와 냉대만을 받아오던 내가 천사라니, 한평생 처음 들어보는 이 아름다운 칭송에 윤락녀는 눈물겹도록 감격했다. 그 감격은 눈물이 폭포수가 되어 흘러냈다. 눈물을 흘리던 윤락녀는 청년의 꼬이고 뒤틀린 두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천하기 그지없는 창녀를 두고 천사라고 부르는 당신이야말로 천사입니다.”
청년과 윤락녀는 서로를 마주 보며 고백했다.
“당신은 나만의 천사입니다.”
그 후 두 사람은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받았다. 청년이 어눌한 손놀림으로 윤락녀의 약지에 떠듬거리며 혼인성사 반지를 끼워줄 땐 축하객들의 감동과 눈물과 축복은 성전을 가득 메웠다. 부부의 연을 맺은 청년과 윤락녀는 삼십 년을 배고파했던 청년을 생각하여 행여 청년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찾아오면 대접하듯 하자는 뜻으로 아담한 대중 음식 가게를 열어 매일 감사의 삶을 살고 있다.
삼십 평생을 구걸하던 청년은 더는 문전박대를 당하지도 않고 매일 세 끼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정성스레 먹여주는 아내가 있기에, 이 세상은 배고픔도 괴로움도 찾아볼 수 없고 손만 뻗으면 먹거리가 풍성한 에덴동산이라고 찬양하곤 했다. 윤락녀였던 아내도 더는 갖은 수모를 당하지도 뭇 남성들을 저주하지 않고 진심으로 남편인 한 남성만을 사랑할 수 있어서 남은 생을 하루같이
“축복으로 살아가리”
라고 다짐을 하곤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명언을 영혼에 아로새기며...
이토록 복지 사각지대와 소외계층 사각지대에서 허덕이던 장애인 걸인의 삶을 새롭게 바꿔준 것은 사회 복지 정책도 아니고 어느 부유층의 자선도 아니며 교회도 아니었다. 바로 중증 장애인 걸인을 사랑했던 윤락녀였다. 뭇 손가락질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윤락녀의 생을 새롭게 바꾼 것은 윤락 방지법도 아니고 성직자도 상담자도 아니었다. 바로 중증 장애인의 꼬이고 뒤틀린 걸인의 손길이었다. 누구나
“솥이 검다고 밥도 검을까!”
라는 속담을 인생 밑천 삼고 한 해의 춘삼월 인생 노름판 삼아 올곧은 인생살이 걸판지게 놀아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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