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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114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2. 11. 14. 09:32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114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KuOSZeGJuAA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에 서열이 존재하거나 차등이 있을 리 없습니다. 위령성월을 보내는 우리는 세상에서 성인으로 인정한 이들만이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선 모든 이가 성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아버지 하느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차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세상은 하늘나라와 같지는 않습니다. 분명 같은 세상에 태어났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또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기준에 따라 구분되고 그 속에서 차별을 경험합니다. 운명이라고 말하는 정해진 삶의 궤도를 도는 듯 여기는 이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물론 좋은 쪽, 높은 쪽에 속한 사람이라면 기뻐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머지의 차별받는 쪽에 서게 마련이고, 또 그 속에서도 또 다른 차별이 발생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그 차별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에 구걸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은총이 배제되거나 결함이 있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나자렛 사람은 한 사람이었고,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어왔을 때, 그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희망으로 여겼습니다. 그분은 자신과 같은 이들을 도와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는 소리높여 포기하지 않고 고함을 칩니다. 그의 고함이 큰 이유는 그 소리를 들어야 할 주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누구보다 큰 소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힘 없고 초라한 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 뿐인 나자렛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아는대로 눈을 뜨게 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런 질문을 들을 수 있는 이들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느님이 한 분 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하느님을 믿는 중임을 잊지 말아야 하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유일하고 공평한 사람이어야 함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8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