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순교자 성월 맞이 묵상글|이 시대 새 순교의 삶
김철이 비안네
매년 구월은 순교자 성월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구월 한 달 동안 신앙을 증거(證據) 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길을 따르신 장한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 행적을 기려야 한다.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구원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순교 신심(信心)은 특별한 시기에만 고양(高揚)시키는 그런 신심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언제나 순교할 정신 무장을 지닌 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순교자 성월을 별도로 정한 것은 순교 신심만큼 신앙 쇄신에 도움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순교 신심만큼 그리스도 신앙인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순교는 이제 흘러간 옛 시절의 일이 되었다. 오늘날 현대의 신앙인들은 순교의 압박을 받지 않는다. 공기의 존재를 지극히 당연시 받아들이듯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신앙의 자유 역시 그렇게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다.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은 이제 역사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과거사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 영성이 무의미(無意味)해지는 것은 아니다. 복음이 우리가 목숨 걸고 따라야 할 지고의 가치라는 것은 피를 불렀던 박해 시대나 종교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순교 영성은 목숨을 내 던져야 하는 박해 시대보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더 요청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용(實用)의 가면을 쓴 물질만능주의(物質萬能主義)와 향락주의(享樂主義)가 날로 만연하고 있음을 부정하진 못할 것이며 겉으로는 진리와 평화를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개인주의(個人主義)와 이기주의(利己主義)가 대세인 사실 또한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영악(靈惡)해지고 있음이다. 우리는 이 모든 영적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십자가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숱한 유혹들은 순교의 현대적 의미를 일깨우는 칼날과 같다. 오늘날 순교는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세상의 칼날에 과감히 맞서 싸우는 것이다. 참된 신앙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국 매 순간이 박해 시대로 맞아야 한다. 성령의 이끄심과 순교성인들의 전구를 구하면서 세상의 박해를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 교서(敎皇敎書) “찬미 받으소서”에서 우리에게 녹색 순교자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의 순교’ 시대는 끝났다 하더라도 우리가 계속 걸어야 할 순교의 길이 세상 한가운데서 주님을 성실하게 증거 하는 ‘녹색 순교’의 길이다. 녹색 순교는 일상에서 그리스도 가르침에 반하는 것을 거부하고, 손해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내던져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창조주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피조물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을 길어 올리는 녹색 순교자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즐거운 불편을 선택하는 이들이 녹색 순교자일 것이며 건강한 생명체들을 키우고 나누는 기쁨을 누리는 이들이 바로 녹색 순교자일 것이다. 검소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적 생활양식을 용기 있게 선택하는 이들이 녹색 순교자일 것이며 우리 또한 녹색 순교자가 될 수 있음이다.
신앙은 액세서리가 아니므로 목숨을 내 던질 각오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하느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피조물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녹색 순교자가 되길 삼위 하느님의 품으로 초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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