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님 계신 전선 (1952)

松竹/김철이 2022. 6. 10. 09:22

주현미 - 님 계신 전선 (1952)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Rye9NhqJ4Fw

 

 

 

 

 

 

노래 이야기

 

6.25 전쟁 당시 찍은 연예인들의 사진을 보면, 특이하게도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들이 많은데요. 그 시절에는 많은 가수와 배우, 코미디언들이 군예대에 종군 하면서 군번 없는 군인으로 불리며 군복을 입은 채로 국군 위문공연을 다녔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에 보면 코미디언 구봉서씨, 가요황제 남인수씨의 모습도 있고요. 그 중에는 만년 꾀꼬리가수라고 불렸던 금사향 선배님이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나 월남한 실향민이었던 금사향 선배님은 194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공부 섬유국 영문 타이피스트로 취직을 했다가, 그 해 조선13도 전국가수 선발 경연대회에 출전해서 2등을 차지하면서 가요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때 1등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바로 가수 박재홍 선배님이었고요. 이 대회에서의 수상을 계기로 가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금사향 선배님은 1949년 한국중앙방송국 전속가수 1기가 되었고요. 이어서 첫사랑이라는 곡을 발표하면서 정식가수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한 점의 군더더기도 없이 맑고 고운 음색과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금사향 선배님은 증류수로 걸러낸 목소리라는 평을 들었는습니다.그래서, 가수로 데뷔할 때 본명이었던 최영필이라는 이름 대신 거문고 줄로 짜낸 고운 목소리라는 뜻의 금사향이라는 예명을 갖게 되었는데요. 이 예명은 태평레코드사 전속작곡가였던 고려성 선생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죠.

 

하지만, 가수로 데뷔한 지 얼마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금사향 선배님은 군예대에 소속되어 국군을 위한 위문공연을 다녔는데요. 여기저기서 포탄이 터지는 전방에서 군번없는 군인이 되어 국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마음을 달래주는 금사향 선배님의 모습은, 가녀린 체구에 작은 키였지만, 더없이 커 보였고요. 외유내강 그 자체였습니다.

 

그 시절, 군예대 대장은 작곡가 박시춘 선생님이었는데요. 금사향 선배님을 눈여겨봤던 박시춘 선생님은 금사향씨에게 노래 한곡을 건네주었는데, 그 노래가 바로 손로원 선생님이 작사하고 박시춘 선생님이 작곡한 님 계신 전선입니다.

 

당시 부산역, 대구역 광장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장병들이 앉아서 불안한 얼굴로 대기 중인 광경이 흔했구요. 그들을 환송하는 가족들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울면서 자신의 아들과 남편과 남동생을 전쟁터로 떠나보내야만 했죠. 그리고, 이런 환송을 받으며 떠난 장병들은 무슨 고지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는데요. 바로 그렇게 전쟁터로 가족을 떠나보내는 모습과 절절한 심정을 담아 만든 노래가 님 계신 전선이었습니다.

 

 

태극기 흔들며 님을 보낸

새벽 정거장 기적이 울었소

만세 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던 날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 님이여 건강하소서

 

두 손을 붙잡고 님의 축복

빌던 정거장 햇빛도 밝았소

파도 치는 깃발 아래 헤어지던 날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 님이여 건강하소서

 

 

1952년 발표된 님 계신 전선은 피난 시절 한국 가요의 산실이었던 대구의 오리엔트 레코드사를 통해서 제작 발표되었는데요. 제대로 된 스튜디오가 없어 살롱을 빌렸고, 방음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금사향 선배님은 소음이 적은 심야에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을 치고 녹음을 했다고 하죠. 그리고,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가족을 전선으로 떠나보낸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고요.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소망의 노래로, 위험한 전선에서 생사를 다투고 있을 가족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피눈물의 노래로 사랑 받았습니다.

 

님 계신 전선은 원래 2절까지만 녹음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2절로 알고 있었는데요. 그러다, 이 노래가 원래 3절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집니다. 금사향 선배님이 직접 자필 메모로 님 계선 전선3절 노래가사를 써서 알려준 건데요. 그래서, 2008년에 강화도 선원사 사지에 세워진 노래비엔 2절까지만 새겨져 있었는데, 그 이후, 2014. 625, 은평구 녹번동 평화공원에 새롭게 건립된 님 계신 전선의 노래비에는 새로운 3절이 새겨질 수 있었고요. 3절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랑의 몸이신 님이 떠난 새벽 정거장

햇빛도 밝았소 동리사람 인사마다 즐거웁던 날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 님이여 건강하소서

 

1절에서는 님이 떠날 새벽 정거장에서 깃발을 흔들어 환송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고, 2절은 군인들을 환송하느라 파도치는 것처럼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마지막 3절은 님이 떠난 새벽 정거장에서의 모습을 그리면서 용감하게 싸우고 건강하기를 기원하고 있는데요. 가족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우리 모두의 마음이 담긴 노래가 바로 님 계신 전선이었습니다.

 

금사향 선배님은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한복에 하이힐을 신으면서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요. 솔직히, 그렇게 하이힐을 신지 않더라도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순간 모두의 마음을 노래 하나만으로 사로잡아버리는 무대 위의 여장부가 바로 금사향 선배님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노래하는 것이 두려울 법도 하지만, 공연 도중 사망해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먹물도장을 찍고, 장병들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가 태극기를 휘날리며 노래했던 주인공이 바로 금사향 선배님이었고요.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밝고 명랑한 홍콩 아가씨를 노래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준 사람도 바로 금사향 선배님이었죠.

 

금사향 선배님은 여든아홉의 나이로 소천하시기 전까지 무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여러 자선행사의 무대에 올라 여전히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주셨는데요. 여전히 명랑하고 재치있고 낙천적인 모습으로 가수를 천직으로 생각하며 한평생 살아오신 금사향 선배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젊은 세대들은 6.25 전쟁이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전쟁을 겪어본 분들에겐 여전히 남아있는 아픔이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고,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비극이죠.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님 계신 전선을 오랜만에 다시 부르다보면, 저절로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평화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