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松竹/김철이 2020. 11. 11. 09:34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nNdAVstTPYE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를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과 하느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당연히 놀라운 기적으로 사람에게 치유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고 그를 통해 우리의 믿음은 확신이 되고 그것이 주님에 대한 증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적들을 살피다 보면 이 기적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꼭 우리와는 다른 시선 하나가 느껴집니다. 그것은 주인공이신 주님의 시선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모든 기적의 주인공은 예수님이 아니시라는 느낌에 접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적이 주님을 드러내는 증명이라면 주님에게 이 모든 것은 단지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었고 그것은 어떤 목적이 아니라 그 기적이 필요했던 사람에게만 주어진 은총이었습니다. 곧 모든 기적은 기적을 행한 예수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과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전달하시고 그 사람에게 소중한 삶을 찾아주시고 그가 사람들 사이에 다시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어지는 이 천형, 곧 하늘의 벌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을 만나자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에서 버림받게 만들었던 이 형벌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 그들을 구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사제의 판결이었습니다. 

 

그렇게 길을 떠난 이들은 가는 도중 자신들이 낫게 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사제를 향해 걷던 길을 계속 걸었을 겁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삶을 되돌릴 방법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한 사람만큼은 주님께 돌아와 그를 구해주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이 놀라운 기적을 다른 이들에게는 감추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야기만 듣고 길을 떠났으니 이 기적은 시간을 두고 일어난 셈입니다. 그 주인공들은 그 길에서 이 기적을 느꼈을 것이고 이것을 베푸신 하느님의 능력을 온 몸으로 증명하는 이들이 되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사랑의 증거가 자신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은 복음처럼 다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기적을 자신만의 비밀로 숨기고 살기를 택했습니다. 자신이 나병환자였다는 사실을 감추고 사제의 증명으로 그냥 삶을 찾으려 했을테니 말입니다. 복음이 전하는 내용과 복음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이렇게 교차되고 씁쓸함이 남습니다. 

 

 

그러나 이 기적을 주님이 거두시지는 않으셨을겁니다. 하느님은 항상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이 백성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시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이 이기적인 백성을 위해 계속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이 구원사업의 주인공은 바로 하느님이 아버지와 이 백성들에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주인공이 펼치는 또 다른 주인공들을 위한 이 거룩한 일들은 늘 그렇게 이루어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