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松竹/김철이 2020. 7. 20. 08:31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pyiHxuhUQbo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필요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청했을수도 있고, 예수님을 떠보기 위한 시험일수도 있었겠지만 이 둘 다 그들이 지닌 신분에는 전혀 맞지 않는 요구였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름은 모든 신자에게 공통적인 부분입니다. 기적이나 능력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지만 반대로 그런 것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잘못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이 두가지 가능성 모두에서 잘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신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에게서 확인하려 했다는 것은 그것이 가능했을 때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을 부정하고 자신들조차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다면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그분을 이미 하느님과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적을 부정하는 것, 기적만을 신봉하는 것 모두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일 뿐 그것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거나 보여주려는 의도는 그리스도의 기적과는 다른 가치입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하느님의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이야기하려는 이들도 문제지만 그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사람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고쳐져야 합니다. 

 

성직자로 살면서 가끔 듣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 '신부님도 사람이다', '신부님도 성직자 이전에 한 사람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기 전이라는 근본을 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이 성직자일 뿐입니다. 하느님이 맡기신 일, 곧 성무를 하는 사람일 뿐 믿음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는 사제가 해야 할 일을 하며 하느님을 믿고 따릅니다. 그리고 그 일에는 하느님의 사람들과 세상이 놓여 있습니다. 

 

성무는 하느님을 증거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 일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식별하고 구분하는 것은 기적 등의 표징이 아니라 그 삶의 태도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성직자가 아닌 누구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