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마음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이러이러한 현상은 큰일이다 바꾸고 개선 시켜야 한다!"
헌데 하느님은 무반응인 것 처럼 느껴집니다. 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장 바뀌어야 할 요소가 있는데 하느님은 느긋하게 관망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답답해집니다.
굉장히 초기부터 존재해 온 갈등입니다. 물론 결과가 예정되어 있는 갈등이지요. 하느님이 승리하시고 조급해하는 이들이 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과 찰나는 싸움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쩌자는 걸까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걸까요?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하시게 두면 되는 걸까요? 이러한 생각 역시 또다른 극단을 달리는 생각입니다. 모두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전형적인 흑백논리이지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고 사랑 그 자체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자신의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으며 또한 제자리에 멈춰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꾸준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개선시켜 나갑니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이 우선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생각들은 저마다 천차만별이라서 누구는 하느님에게 불만을 갖고, 누구는 이웃에게 불만을 갖고, 누구는 사회구조에 불만을 갖고, 누구는 경제에 불만을 갖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항상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합리적이지 않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잡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준비되지 않은 아이가 수술실에서 수술을 집도하는 것과 같은 일이 야기됩니다. 수술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규교육을 올바로 받고 수많은 임상과정을 거친 뒤에 비로소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내면이 성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흥분을 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평화 중에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해 냅니다. 세상에는 자기 가정 하나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면서 밖에서는 가정 전문가인양 행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차적인 일부터 충실히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TV 중계를 보면서는 누구나 감독인 양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선수들과 호흡을 함께 하면서 그 수많은 훈련의 나날들을 보내는 사람은 오직 실질적인 감독 한 명 뿐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제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와 교회의 사명의 세부적 변화 (0) | 2020.07.20 |
---|---|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0) | 2020.07.20 |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0) | 2020.07.19 |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0) | 2020.07.17 |
허락과 허가의 차이 (0) | 2020.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