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松竹/김철이 2020. 7. 19. 01:0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pKsfZjPX3Wo

 

 

초등학교의 이름이 국민학교 였을 때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김해에 김해평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산에서 가장 높다는 금정산 고당봉에 올라 뒷편으로 펼쳐진 김해평야를 보았을 때 설명이 필요없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낙동강 뒤로 펼쳐진 끝도 없는 논들의 모습은 평지에 펼쳐진 광활한 잔디밭과 같았습니다. 

 

이제 고당봉에 올라보면 많이 줄어든 논과 함께 희뿌연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평야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생명의 곡식은 점점 사라져갑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땀흘려 일하며 세상에 생명을 일구는 이들 모두를 '농민'이라는 표현에 담아 생각하고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농민은 하느님에게서 떠나게 된 사람이 그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근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땅을 일구어 씨앗을 심고 결실을 이루며 땀흘려 생명을 내어 놓는 이의 삶이 농민의 삶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정당하게 먹고 살 것을 얻게 되며 모든 것의 생명의 근본을 잊지 않게 됩니다. 

 

농민의 날.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밀농사가 거의 사라진 우리에겐 논과 밭에 잡초를 뽑아내는 것으로 이 비유를 이해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겁니다. 어릴 때 한 농부가 볍씨에서 한톨의 쌀을 얻기 위해 88번을 논에 들어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지금이야 농사 기술도 늘어서 한결 더 수월해졌다고 하지만 지금 농촌에는 김을 매지 못해 잡풀이 무성한 가을의 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농사짓는 이들이 사라진지 오래. 이제 가을 황금들녘 벼처럼 허리가 꺽인 어른들만 남은 농촌에는 더 이상 가라지를 뽑을 이들이 없습니다. 벼농사는 하면 할 수록 빚이 늘어가는 못할 짓이 되어 버렸고 그나마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사업이라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땅을 일구어 삶을 사는 것은 변하지 않는 근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좁은 땅에 더 많은 애착을 가지고 더 많은 노력으로 많은 곡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좋은 땅과 사계절 확실한 좋은 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축복된 나라였지만 지금 우리는 땀흘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선호하고 직업에 귀천을 기정사실하고 돈이 되는 일로 구분되는 혼란한 상황들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농촌을 살리자는 이야기에 반대할 이들은 없지만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삶의 고리들은 농촌을 돈이 안되면 버려야 하는 곳으로 만들었고 땀흘려 일한 곡식은 밭에서는 헐값으로 시장에서는 높은 가격의 벽으로 사람들을 힘겹게 하는 이상한 살림살이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복음의 이야기는 한 밭에서 자라는 밀과 가라지를 함부로 구별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해설하기에 우리의 현실은 밀이 사라지고 가라지를 뽑을 일꾼도 사라진 암담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하심 속에 누가 밀인지 가라지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어쩌면 의미가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밀이 무시당하고 화려하게 성장하는 가라지가 더 대접받는 세상인듯도 보입니다. 

 

결실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맘보다 밀의 가치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 느끼는 시간입니다. 땀의 의미를 이해하는 우리와 그 필요성을 살려낼 지혜를 모두 되찾기를 바라는 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