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가리워져 있다는 것은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세상이 가리워져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아니, 눈을 떠야 하고 귀를 열어야 합니다.
요즘같이 비가 오는 날은 내용물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으나 박스가 젖어 있는 제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게 될 물건은 원래의 포장지까지도 전혀 하자가 없는데 가장 외부를 둘러싼 박스가 조금 젖었다고 열어보지도 않고 화를 낸다면 그건 지나친 반응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의 본질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보고 만질 수 있는 이 세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고 우리의 생의 최종 완성점은 영원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살아생전 열심히 고생한 의인은 영원에서 상급을 받고 반면 부와 쾌락을 향유하면서 타인을 괴롭혀 온 악인은 영원 안에서 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늘 전해져오는 영적 진리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도 이 영원 안에서 이루어질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세 안에서 '정의의 완전한 실현'을 이루어야 한다고 합니다. 현세에서 정의를 위해서 마땅히 노력해야 하지만 마치 결벽증 환자처럼 정의를 완전히 이루겠다고 나서는 것은 너무나도 과한 집착입니다. 왜냐하면 '결코 그렇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 세상은 누가 보더라도 균형잡혀 있지 않습니다. 성경 저자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악인이 득세하고 의인이 박해를 받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발견되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곧잘 박해를 각오하라는 경고를 던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완성은 영원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영원과 영원하신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분은 진정으로 정의로운 분이시고 선하신 분이라서 의로운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고 반대로 악을 자행한 이들에게 고스란히 그들의 악을 갚아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우리의 덜 뜨여진 눈을 뜨고 덜 열려진 귀를 열면 됩니다. 우리는 나날이 이 진리를 배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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