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이런 하루로 살았으면 좋겠다/(수필)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19. 9. 16. 15:53

이런 하루로 살았으면 좋겠다

 

                                                                                김철이

 

 세상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가 향기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때 꽃이나 갖가지 향에서 절로 풍기는 냄새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이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고 받아들일 게 아니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폭을 넓힌다면 대자연에 둥지를 틀어 자생하는 식물이나 곤충, 하늘을 나는 새들, 그리고 바다나 민물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에게만 향기가 자생할 거라는 고정 관념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란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생명체라면 죄다 나름대로 향기를 지닌 채 태어나 자신의 향기를 풍겨야 할 시기에 지닌 능력을 다해 향기를 배출하는 것이다. 꽃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향기를 만나듯이 사시사철 갖가지 꽃들은 제철에 맞춰 제각기 지닌 향기를 풍기고 네발 달린 짐승이나 여섯 개의 발로 뛰거나 기는 곤충들뿐만 아니라 이 무리에도 들지 못한 채 벌레라 천대받는 짐승들 또한 본능에 따라 지니고 태어난 향기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본다면 사계를 짙은 향기로 사람들의 후각을 유혹하는 장미꽃이 있는가 하면 가을철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금마타리라고 이름이 붙여졌고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 바위틈에 주로 살며 가을철 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 사람의 분뇨나 두엄 썩는 냄새와 비슷한 악취를 풍기는 식물도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곤충이나 짐승들이 이성을 유혹할 때나 길을 찾을 때, 몸 밖으로 분비되는 페로몬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방어의 수단으로 몸 전체에 지독한 악취를 풍기게 하여 위기에서 벗어나는 노린재나 후각이 마비될 정도의 악취를 항문으로 내보내 자신보다 몇 배나 몸집이 더 큰 적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스컹크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비록 몸집은 작지만, 신선한 오이 향을 풍기는 은어(銀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은어는 죽어서까지 독특한 향기로 세상 많은 사람의 입맛을 돋운다. 한낱 미물(微物)에 불과한 물고기조차 살아서도 죽어서도 세상에 향기를 남기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사람이 그에 뒤져서야 하겠는가. 사랑의 영양분을 머금은 영혼으로 살아 사람의 향기가 저절로 물씬 풍기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에서 맺은 혈륜을 놓기 싫어 오열하며 헤어진 부친(先親)께서 살아생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고, 그 말씀의 딱지가 내 영혼 속에 아스팔트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앉은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오감(五感)을 지닌 세상사람 중 자신이 처해있는 위치에 나름대로 삶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가는데 제가 앉은 자리에서도 제 향기를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타인 삶의 꽃밭을 넘보는 자는 도덕도 인정도 지니지 못한 금수(禽獸)만도 못하며 그런 성품을 지닌 자는 주어진 생애를 살면서 제 맡은 향기조차 확실하게 풍겨보지 못한 채 하늘의 부르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삶의 체험담이자 인생의 큰 교훈이었다. 선친의 이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 뭇 인간은 누구 하나같은 향기를 지닌 이가 없다는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사람 중 생김새와 습관과 성격은 닮은꼴이 많을지 몰라도 타고난 삶의 향기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군인정신과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은 전선에서 총과 칼의 향기를 지어내야 하고, 나라 새싹 교육에 남다른 생각이 깊다면 분필을 잡은 손의 향기를 풍겨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법을 다루거나 나무를 다루는 사람은 죄와 목제의 향기를 저며 내야하고 농민은 흙의 향기를 화원을 경영하는 사람은 꽃의 향기를 절로 자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길어야 칠팔십 짧으면 오륙십 년을 살아야 하는 생의 소풍 길에서 날개조차 없는 하루살이 생을 살아야 하고 하루를 살면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생의 보금자리를 은은한 향기를 지어내는 영혼으로 살라고 말이다. 이러한 삶의 향기를 낼 수 있는 영혼은 태어날 때 타고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삶의 향기를 전하는 향의 전령사답게 한 생을 사는 동안 가지도 잎사귀도 없는 사람의 향기를 지어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향기를 풍길 줄 모르는 영혼은 살아있다 하여도 진정 살아있는 영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 나들이 터전에 따뜻한 피가 가슴에 절로 흐르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오렌지 노란 향기처럼 생각만 하여도 새콤하면서 달콤한 하루로 살았으면 좋겠다.

 

 하늘로 머리를 둔 사람치고 보람되고 뜻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이 한 명도 없을 터, 오고 싶어 왔던 사람 그 누가 있겠느냐만, 기왕에 내친걸음 인생 삶의 길섶에서 향기 나는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향기 나는 삶을 살기를 원하기보다 한평생 살면서 타인 삶의 행로에 사람의 향기 절로 지어 뿜어내는 영혼으로 살아내는 생의 지표가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유년시절부터 선친의 유지(維持)를 이어받아 나름대로 사람 사는 향기를 짓는 삶을 살아보려 애썼으나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그 판단은 하늘에 맡기고 언어의 마술사 작가로서 본분을 다하려 노력했으니 하늘이 내게 큰 선물을 내리셨다. 수필가로 한비라는 옥토(沃土)에 뿌리를 내리고 몇 알 글의 씨앗을 뿌려놓았더니 쉼 없이 쟁기질하는 농부의 마음을 지닌 이의 손길과 하늘의 큰 은혜에 힘입어 거둔 수확은 내 생에 글쟁이의 길을 걸을 수 있고 큰 병치레 하지 않고 건강한 육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늘이 내리신 큰 축복이었다.

 

 이 축복이 몇 배 더 큰 축복의 비로 내려 내게 남은 인생 향수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글쟁이의 해맑은 영혼으로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