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제 4부 봄 노래 꽃 노래 새노래
금수강산 산과 들은 겨우내 포근한 솜이불 같은 새하얀 눈 이불을 덮은 채 길고 긴 겨울잠을 잤지요. 산과 들의 슬하의 자녀인 갖은 동물과 식물들도 산과 들의 포근한 품속에서 보호를 받으며 편안한 겨울잠을 곤히 잤는데 강남 갔던 제비가 물어온 봄 씨앗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온 세상 산과 들 갖은 동물과 식물을 손도 없이 흔들어 깨웠어요. 매서운 추위 탓에 꽁꽁 얼어붙은 개울물과 냇물에 묶여 하는 수 없이 긴 겨울잠을 자야 했던 종이배도 자유를 얻은 듯 얼음이 풀려 서로 어깨를 걸고 걸어 어깨동무하고 흐르는 물을 따라 정처없는 걸음을 옮겼어요. 물살에 몸을 실어 아래로 내려갈수록 봄을 느낄 수 있는 기운이 더욱 짙게 와 닿았어요. 얼마쯤 흘러갔을까요. 어느 산아래 새들이 모여 사는 냇물이 흐르는 언덕 위 작은 마을에서 무슨 큰 잔치가 벌어졌는지 한바탕 떠들썩 소란이 일었고요. 궁금해진 종이배는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춘 채 영문을 알아보려고 새 중에서 유난히 고운 목소리에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에게 물었어요.
종이배: “애! 여기 이 마을에 무슨 일 있니…? ”
꾀꼬리: “응! 우리 마을에선 매년 이만 때면”
꾀꼬리: “새봄을 맞아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큰 잔치를 벌인단다.”
종이배: “그런데 다른 동물들도 많을 텐데 여긴 새들만 모여 있네?”
홍여새: “으응 그건 말이야 우리 마을은 온갖 새들만 모여 사는 새들의 마을이야.”
황금새: “그러니 이렇게 평화롭고 서로 입으로 내뱉는 소리마다 아름답지 않니”
호반새: “다른 짐승들 나라처럼 서로 더 많이 먹겠다고 으르렁대며 다툴 필요도 없고 말이야.”
물레새: “다른 짐승들 나라에서 침략만 해오지 않으면”
동박새: “우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평화로이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되솔새: “힘없는 우리가 다른 짐승들 나라를 불법 침범한다는 건 만무한 일이니 말이야.”
꾀꼬리: “참! 넌, 어디서 온 누구니? 모습을 보아 우리와 같은 새는 아닌 듯싶은데”
종이배: “으응 난 말이야 세상구경 나온 종이배야”
종이배: “난 비록 종이로 만들어져 생명은 없지만, 세상 모든 생명이 평화를 누리길 바래”
호반새: “그럼 너도 우리처럼 세상을 두루 다닐 수 있겠네”
종이배: “그런 셈이지. 모습과 해야 할 일의 몫은 다르지만 말이야.”
동여새: “참 잘 됐구나. 너도 세상 다니며 평화로이 살려 하는 우리 마음을 널리 전해주렴”
종이배: “그래 너희 바램은 꼭 이뤄질 거야 나도 너희 마음을 많은 생명에게 전할게”
황금새: “고마워! 그리고 잘 가! 우리 다음에 또 만나 안녕!”
종이배는 고운 목소리로 갖은 아름다운 노래를 지어내며 화려한 깃털로 세상 평화를 지어내려 춤추는 새들과 짧은 만남과 이별을 하고 아래로 내려가다 온몸으로 새봄을 축하하는 또 다른 무리와 만나게 되었어요. 그들은 물속에서 생활하는 물밑 곤충 나라의 작은 곤충들이었어요. 그들은 비록 몸집은 작고 아담했지만, 새봄을 축하하는 마음은 세상 어떤 생명보다 크고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종이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물밑을 자유로이 헤엄치는 곤충들의 무리 속으로 빨려들었어요.
종이배: “애들아! 난 물길 따라 흘러가던 종이배인데 너희와 함께 놀고 싶은데 끼워줄래?”
물방개: “좋아! 우린 지금 물속 숨바꼭질하는 중인데 우리랑 함께 놀아”
풍뎅이: “넌, 맨 나중에 왔으니 네가 술래 해” 물장군: “그건 불공평하잖아. 그래도 애는 우리 곤충 마을을 찾아온 손님인데” 강도래: “어떻게 처음부터 술래를 시키느냐 다시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해야지” 종이배: “아냐 내가 술래 할게. 다들 숨어 기왕이면 꼭꼭 숨어 난 찾는 건 도사 거든”
날도래: “그래? 그럼 우린 다 숨는다.”
강도래: “애들아! 종이배는 이곳 사정을 잘 모르니 너무 멀리 숨지마”
물자라: “그런 걱정은 땅 위 전봇대에 붙들어 매셔”
종이배는 아직 꽃샘추위가 떠나질 않은 물가에서 작고 아담한 곤충 나라 백성과 한데 어울려 숨바꼭질하며 한때를 신명 나게 즐기다 곤충 나라 백성이 흔들어 주는 앙증맞은 배웅을 뒤로하고 또 한 번의 아쉬운 작별을 하고 또 다른 생명의 세상구경을 하려고 아래로 흐르는 물살 위에 몸을 실었어요. 한참을 흘러가다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바라다보니 좀전에 헤어진 곤충 나라 백성처럼 몸집이 앙증맞게 작은 민물고기들이 머리를 맞대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각기 한마디씩 했어요.
동사리: “어제도 내 친구네가 이사를 갔데 썩은 기름이 떠내려와서 못살겠다고 말아야!”
쏘가리: “우리 가족도 이사를 가긴 가야겠는데 어디로 갈지 몰라 의논 중이야.”
산천어: “이 강물이 더럽혀졌다고 다들 이사를 가버리면 이 강은 누가 지키고 누가 돌보니”
버들치: “그렇지만 어떡해 숨이 막혀 못살겠는 걸.”
종이배: “애들아! 다들 새봄이 온다고 좋아하며 축제의 분위기에 들떠 있던데 너희는 무슨 걱정이 그리 많니?”
피라미: “축제분위기 좋아하시네! 이 구정물 속에서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열목어: “숨이나 제대로 한번 쉬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참붕어: “이곳도 옛날엔 맑고 투명한 물이 흘러 다들 살기 너무 좋다고 칭송이 자자했었는데”
종이배: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오염이 되고 말았니?”
동사리: “뻔하지 뭐! 사람들이 자기들 편하자고 기름이나 농약을 생각 없이 아무 곳에다 버려서 그렇지!”
쏘가리: “자기들은 위험하다고 우리의 둥지인 강물이나 냇물에 아무렇게나 내다 버리곤 하는데”
산천어: “결국엔 자기들도 이 똥물을 마시고 먹어야 한다는 걸 모르나 봐”
버들치: “사람들은 참 어리석기도 하지 우리가 살 수 없음 사람들도 살 수 없을 텐데 말이야.”
종이배: “너희 마음이 많이 상했구나! 그렇지만 이해하고 기다려줘 그러다 보면 사람들도 자기들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날이 올 테지”
사람들이 나름대로 사용하다 버린 갖가지 기름과 농약들로 모질게 오염된 물에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 살기 좋고 맑은 물을 찾아 제다 떠나고 남은 물고기들의 아픈 사연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는 종이배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프고 쓰렸어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얼마쯤 흘러갔을 때였어요. 갖가지 나무와 꽃들로 무성히 숲을 이룬 곳에서 등창에 날개를 단 곤충무리를 만났어요.
종이배: “애들아! 너희는 그곳에서 뭘 하니?”
여왕벌: “으응 우린 얼마 안 있으면 찾아올 새봄을 맞이하려고 우리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어.”
노린재: “매년 그랬지만 봄은 우리 마을부터 찾아오시거든.”
종이배: “그랬구나! 그럼 너희에게 부탁 하나 할게”
사마귀: “무슨 부탁인지 우리가 들어줄 수 있으면 들어줘야지”
종이배: “고마워 다른 부탁이 아니라 오다 보니 저 위쪽 물속 곤충 나라의 물이 오염이 되어 살아 있는 생명이 도무지 살 수 없게 되었던데 너희 마을을 먼저 찾아오시는 새봄한테 부탁해서 가엾은 물속 곤충들을 구해달라고 말이야”
하늘소: “그 거라면 걱정하지 마! 우리와 같은 곤충들인데 우리가 도와주지 않음 누가 도와주니”
풍뎅이: “그야 당연하지 우리도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르잖아”
종이배::“정말 고마워 너희가 도와준다니 이젠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겠어.”
한결 마음이 편해진 종이배는 아직 이 세상엔 마음이 순수하고 착한 생명체들이 더 많으니 비록 지금은 갖은 일들로 힘겨워하는 생명이 있고 한순간 잘못 생각에 다른 생명체를 힘들게 하는 생명체가 있더라도 언젠간 서로 화해하고 입을 한데 모아 봄 노래 꽃 노래 새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 날이 꼭 올 거라 믿으며 마냥 아래로 흘러가는 물살 위에 걸음을 재촉했어요. 더 많은 생명체를 만나 더 많은 추억을 쌓아 오라고 종이배를 접어 더 넓은 세상으로 흘려보내 준 영수와 경민에게 마음 모아 감사하며…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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