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맞이하여 우리 영혼의 살을 찌우고 우리 내적 신앙심을 다지는 뜻을 등에 업은 채 이천 년을 하루같이 한 줄 구슬에 꿰어 나누어 주신 어머니 값없는 사랑에 힘입어 그 옛날 목숨을 헌신짝 버리듯 하면서까지 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신앙을 지켜 이 시대의 우리 가슴에 고이 넘겨주신 순교 성인 성녀들의 체온을 느껴보려고 하늘 높아 좋은 날, 지도 신부님 수녀님 인솔하에 복지회 가족들을 비롯하여 후원회 봉사회 회원들은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시월 둘째 주 무명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있는 한티 순교자 성지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바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 속담에 걸맞게 우리가 성지순례를 갔었던 날이 주교님이 집전하시는 대구대교구 100주년의 해에 맞이하게 된 한티 순교성지 조성 20주년은 기념하는 기념미사와 오후 4시부터는 경북도립국악단과 대구대교구 남성합창단, 뿌에리 깐또레스의 합창과 핸드벨 연주가 이어지는 대음악회가 있었던 터라 어디서 그렇게 많은 인파가 밀려들었는지 예수 그리스도 향기를 맞보려고 전국에서 이어진 순례차량과 기념식에 참석하려는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성지로 향하는 길섶에서 민락성당 교우들이 여섯 대의 버스로 한티성지 순례가는 모습도 접한 바 있다. 한티 순교성지에 유해(遺骸)로 묻혀 있고 살아생전 신앙의 길잡이 역할을 해 주신 바 있는 무명순교자들 삶의 향기는 이러하다.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대구에 살던 김응진 가롤로(김현상의 차남) 가정과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및 그의 숙부 서익순과 노곡동 송 씨 가정과 신나무 골의 여러 신자가 한티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그해 봄 문경 한실 서태순 베드로가 잡혀 상주 감영에 끌려갔다가 12월 19일 순교하니 조카 서상돈이 그 시신을 한티에 안장하했다고 한다. 1867년 박해가 잠잠해지는 듯하자 서익순과 이 알로이시오가 한티에서 대구로 내려가다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절두산에서 백지사를 당하고 한강물에 던져져 순교하였다고 한다. 1868년 음력 4월 17일에 독일인 오페르트(Oppert)가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를 파헤친 사건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선참후계(先斬後啓)령을 내려 박해에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1868년 봄 한티에 포졸들이 들어와 재판과정도 없이 배교하지 않는 조 가롤로를 비롯한 30여 명의 신자를 현장에서 처형하고, 달아나는 신자들은 뒤따라가서 학살하였다고 한다. 포졸들이 물러가고 난 뒤 살아남은 신자들이 한티로 돌아와 보니 동네는 불타 사라지고 온 산 곳곳에 시신이 썩어가고 있어 코를 디밀 수 없었다고 한다. 너무 많이 썩어서 옮길 수조차 없었으므로 그 자리에 매장을 하였다고 한다.(현재 한티의 순교자 묘역의 묘는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한편, 당시의 공소 회장이었던 조 가롤로와 부인 최 발바라와 그의 누이동생 조아기의 시신은 사기굴 바로 앞에 있던 그들의 밭에 나란히 묻었다. 그리하여 한티는 순교자들이 살던 신자 촌이며 또한 그들이 처형을 당한 순교지였을 뿐 아니라 순교자들의 시신이 묻혀 있는 완전한 순교성지가 되었다. 이처럼 한티 순교성지의 무명순교자들은 피 흘려 주님을 증거하며 오로지 주의 성심에 들기 위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마태오 22,34-40). 하신 일류 최고 스승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였음은 누구 하나 부인(否認)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느낀 바는 모두 다르겠지만, 분명히 일치되어야 할 것은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공덕(功德)은 물론 자신의 이름 석 자 새겨진 공덕비(功德碑) 하나 얻지 못하며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사셨던 그분들의 혼(魂)과 신앙심(信仰心)을 본받아 실천하는 삶을 살아내는 한편 이 두 가지 실천상황을 소중히 간직하다 마지막 날 주님의 어전에 내놓으며 “주님 저도 이만하면 쓸 만합니까…?” 하고 감히 재롱을 부릴 수 있도록 참신앙인 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낙엽도 지고 한 해를 갈무리해야 할 시절에 서서 이미 살아버린 몇 달을 되새김질하여 돌아보고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한없이 찬양받으셔야 할 주님 성심에 먹칠은 하지 않았는지 묵상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천국 문을 열어놓고 우리를 위해 두 무릎에 피멍이 들도록 기도해 주신 성모님의 기도 덕분에 아무런 탈 없이 한티 순교성지를 순례하였고 무명 순교자들의 혼과 신앙심을 영혼에 아로새겼으니 예수 그리스도 값없는 사랑의 도구로써 일조하신 후원회원님들과 봉사회원님들께 이 장을 빌려 감사의 말씀과 박수갈채(拍手喝采)를 보내는 바이다. 무명 순교자들 넋의 춤인 듯 은빛 찬란한 갈대의 춤을 마주하고 미사 봉헌하던 그때의 은혜로운 모습을 돌이켜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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