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영혼의 고향을 찾아서

松竹/김철이 2008. 11. 24. 17:35

영혼의 고향을 찾아서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고 안락한 생을이어갈 것인가를 매순간 생각하며 살아간다. 암울(暗鬱)하고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고생을 생의 낙이자 후세의 밑거름이라 여기며 살아오셨던 우리네 부모님들이나 형님, 누님들의 삶을 잠시 엿보고 있노라면 인간들이 얼마나 안락함을 원하며 사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만 추구하며 쫓아가는 후손들을 훈도할 때마다 입으로는 어려운 시기에 세상에 와서 어렵게 살다 가신 선조를 생각한다면 조금 힘들고 불편함은 참고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가르치면서도 행동은 조금의 불편함도 인내감수하지 못한 채 금세 겉으로 불편함을 토로하곤 한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능(本能)이자 염원(念願)일 것이다. 특히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라는 굴레를 등에 진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장애우들의 삶을 잠시 들여다본다면 고통을 밥 먹듯 겪으며 생활해야 하는 탓에 조그마한 어려움이나 불편함도 견디지 못하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스타일의 삶이 있는가 하면 몇 십년 장애를 벗을 삼아 살아보니 이제 이력이 나서 아무리 힘에 부치고 불편하여도 도를 닦는 도인처럼 묵묵히 대처해 나아가는 형의 삶이 있다.


어떤 형의 삶이 올 고르게 살아가는 삶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나를 비롯한 모든 장애우들의 자세라 여긴다. 또한, 우리들의 입으로 주님이라 고백하는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해 본다면 아무리 심한 육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시련이 따른다 하더라도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것인데 매순간 우리들의 삶 속에 동참하시는 주님은 당신의 고통을 우리도 함께 나누어 저주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는커녕 매순간 불우 짖는 주님의 애끓는 호소조차 못 들은 체하며 네 이웃에게 해준 것이 내게 해준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은 아랑곳없이 이웃이 내미는 도움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는 것이 현실에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반성한다. 그런 우리의 이기적인 삶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주님은 매순간 우리의 영육에게 인내심을 가르치시려 갖은 애를 다 쓰고 계심을 몸소 느낀다.


그 한 예를 든다면, 2008년 8월 13일~ 14일 양일간 함께 했던 부산교구 가톨릭 지체 장애인 복지회 "로사리오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의 여름 캠프에서도 주님의 현존함과 성모 성심의 더 없으신 사랑을 체험한 바 있다. 언제부터인가 물놀이 삼아 다녀온 것이 로사리오의 모후 여름 캠프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여름 캠프는 통영 궁항리 마을을 모체로 했었는데 여름 캠프의 장소로 어디가 좋을까 하고 물색하던 중 본당을 양정성당에 두신 조 수산나 자매님께서 캠프 장소를 제공해 주시겠다. 하시며 자매님 부군께서 평소 낚시를 즐기실 때 숙식처로 마련해 두었던 시골집을 빌려주겠다. 하신 바 있어 자매님의 사랑을 감사히 받아 드려 캠프의 모체로 결정한 것이다. 조 수산나 자매님은 우리 로사리오의 모후 주회를 가지는 날이면 한 달에 한 번 교우들과 함께 식사봉사를 맡아 해 주신 바 있다. 지도 신부님과 지도 수녀님 그리고 우리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봉사해 주실 학생 수녀님 한 분, 학사님 한 분과 로사리오의 모후 단원들은 세 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통영을 향해 두 시간여에 걸쳐 달렸고 마침내 궁항리 마을에 도착하니 우리 영혼 속의 기억에 낯익은 모습들이 우리 레지오 단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담한 시골집 마당으로 들어서니 도시의 대청마루처럼 평평하고 고르지 못하지만, 정겹게 느껴지는 쪽마루가 먼 길을 달려온 우리 일행을 품에 안은 듯 편히 쉬게 해 주었고 쪽마루에 올라앉으니 그리 높지 않은 동산들이 온통 병풍처럼 궁항리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시선을 잠시 머물게 하는 곳이 있어 바라보니 낮은 담장 너머로 통영 앞바다의 검푸른 파도가 잔잔하게 시야를 희롱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틀간 우리 레지오 단원들의 식사봉사를 위해 동행해 주신 조 수산나 자매님 일행이 급히 마련해 주신 부식으로 구수한 시골 정취를 반찬 삼아 실로 오랜만에 입맛에 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고 가는 정담 속에 점심을 마친 일행은 바다를 가까운 거리에서 접해보려고 통영 바다로 향했다. 평지가 아닌 모래사장인 탓에 휠체어 바퀴가 잘 구르지 않아 봉사를 맡으신 분들이 휠체어를 미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대자연 속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철부지 어린아이가 된다는 속설에 걸맞게 넓디넓은 바다를 접하니 봉사자들은 물론 신부님, 수녀님들까지도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로 돌변하여 레지오 단원들을 한 사람씩 들어 짭짤한 짠 기운이 베인 바닷물이 자유로이 넘나드는 모래사장에다 옮겨다 놓았다. 조금만 앉아있어도 금세 물먹은 모래알들이 피부가 약하여 다칠까 봐 신고 있던 양말 속으로 허락도 없이 비집고 들어왔고 짭짤한 바닷물은 바람의 힘을 빌려 조심스레 앉아있는 몸을 넘실대며 흔들어 희롱하였으며 당시에 주어진 주위의 모습들을 글 속에 담으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시야를 가려놓았다. 제만 바라보라는 듯이…


몸이 자유스럽지 못해 평소 행동반경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단원들은 기왕 모랫바닥에 주저앉았으니 동심으로 돌아가 실컷 놀아나 보자는 심정이었던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모래 쌓아 허물기를 하면서 어릴 적 동심을 되찾으려는 듯 아우성들이었다.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튜브에 몸을 의지하여 그저 무심히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타면서 한평생을 살면서 수도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인생사 시련과 고통, 기쁨과 슬픔을 짧은 순간 묵상하게 하였다. 물놀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수산나 자매님 남편께서 낚시를 즐기고 계신 곳을 잠시 들려 낚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곳저곳에서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고 있던 강태공들의 모습과 표정에서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50년 강태공의 삶을 살면서 나름대로 유명세를 타며 낚시를 즐기셨던 아버님의 삶을 간접적으로 묵상하게 하였다. 모래밭에 주저앉아 물놀이하느라 온통 걸인의 모습이 되어 숙소로 돌아온 단원들은 샤워해야만 했었는데 샤워시설이 따로 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 남성 단원들은 수도가 놓여 있는 마당 가운데 비닐자리를 깔고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샤워를 하였고 여성 단원들은 화장실을 겸한 좁은 욕실에서 샤워했었다.


도시의 삶이 그리웠던지 양말 속에 숨어 몰래 따라온 모래알들을 물로 씻어내고 쪽마루에 걸터앉으니 어디선가 코에 익은 한가지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여 찡한 그리움을 느끼게 했었다. 그 냄새의 정체는 모깃불이었는데 모깃불은 어릴 적 세상이 아직 기계문명에 오염되지 않았을 때 무작정 달겨드는 모기를 쫓으려고 생 잡초와 마른 잡초를 적당히 섞어 불을 피워 맵고 퀴퀴한 냄새를 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깃불이 존재하니 분명히 모기도 있을 터,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몇십 년 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모기 편대가 공습경보도 없이 저공비행을 하며 살갗 속에다 마구 기총소사를 퍼붓기 시작했고 손이 있으나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하니 정말 괴롭기가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 모습을 가히 여기시어 지원병을 보내주신 것일까...? 수산나 자매님 남편께서 자동 분무기로 집 안팎을 두루 살충제를 뿌렸으나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살충제를 뿌려놓고 돌아서면 모기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저공비행은 금세 이어지곤 하였다.


생선회와 반주로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은 시골이라 화질이 고르지 못한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한참 열기를 뿜는 하계 올림픽 중계방송을 시청하며 때로는 환희에 찬 탄성을 지르며 또 때로는 실망에 찬 개미 소리를 내며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무심코 방안을 살펴보니 얼기설기 엉킨 전깃줄들이 그 옛날 시골집 처마밑을 연상케 하였다. 아쉬운 한여름 밤의 시간은 발도 없이 내일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했고 이럴 때 혼숙을 안 해보면 언제 혼숙을 해 보냐는 한 단원의 실없는 농담을 뒤로하며 평생에 드물게 체험해 보던 물놀이에 지친 몸을 방에 뉘였으나 잠시 후 온종일 철부지 개구쟁이 모습으로 생활했던 탓에 몹시 지친 듯 방안 이곳저곳에 가늘게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만 들릴 뿐, 낯선 시골 정취 탓인지 몰라도 잠을 쉬 이룰 수가 없었다. 집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퀴퀴한 바닷바람이 멀리서 집안을 기웃거렸다. 어쩌다 잠이 들었는지… 집 안팎에 무수하게 심어져 있는 나뭇가지 위에서 시끄럽게 우지지는 까치와 매미들의 합창에 무거운 눈을 떴다. 잘 잤느냐는 아침인사를 나누며 세수를 하고 아침식사를 마친 단원 일행은 지도 수녀님의 인솔로 통영 미륵산에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려고 세 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탑승하고 케이블카가 설치된 장소로 이동하였다. 케이블카에 탑승하여 미륵산 정상까지 왕복으로 오가는 동안 하늘을 날며 생활하는 새들의 느낌과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남은 여생에 이런 체험을 다시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 안에 홀로 남겨둔 채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堂洞)과 미수동(美修洞)을 연결하는 국내 유일의 해저터널을 관광하려고 목적지를 향해 자동차로 달렸다. 통영 해저터널은 길이 461m, 높이 3.5m, 너비 5m. 1927년 5월에 시공, 1935년 12월에 개통되었다 한다. 한때 사람과 차량이 통행할 수 있고, 관광명소로도 손꼽혀 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만들어진 지 오래되고 공법도 구식이어서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 못쓰게 되자, 1967년 길이 152m, 너비 10m의 통영 교의 완성으로 차량통행이 전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해저터널 관광을 끝으로 이틀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되돌아가서 점심을 하고 수제비로 이른 저녁식사를 한 뒤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본분을 다하려고 부산을 향해 달렸다.


이틀간 쉼없는 일정으로 비록 몸은 지치고 피곤했지만, 많은 것을 묵상케 하였고 이 모든 일정이 그냥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틀간의 모든 일정이 주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으로 진행됐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성모 승천 대축일을 앞두고 한없는 성모 성심의 사랑이 로사리오의 모후 레지오단을 위해 기도해 주심을 묵상케 해 주셨다. 예를 들어 풀어본다면 대다수가 장애우들로 구성된 로사리오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은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레지오 단원으로써 본연의 의무 활동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해 왔음을 자각하고 현실에 장애우들이 생활하기에 모든 시설과 상황이 불편하다 하여도 그 옛날보단 생활할 수 있는 복지시설이 훨씬 잘 되어 있음을 스스로 깨 닿게 하려고 이번 이틀간의 일정을 미리 예비하셨고 불러 실천케 하셨다는 것이며 수산나 자매님 내외를 도구로 쓰시어 장애우들이 생활하기에 무척이나 불편한 그 시골집을 구원의 장소로 사용하신 것이라 주장하고 싶다. 이번 양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레지오 단원으로써 반성할 점과 고쳐 나아가야 할 점을 찾을 수 있었음에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께 진정 고개 숙여 감사하는 바이다.


끝으로 이번 이틀간의 행사 일정을 위해 많은 염려와 고생을 감수 인내하신 지도 신부님과 지도 수녀님, 그리고 행사 장소를 제공해 주셨던 수산나 자매님 내외분과 헌신적으로 봉사해 주신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 이 장을 빌려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