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영적 양식을 찾아서

松竹/김철이 2008. 8. 26. 13:42

새벽녘까지 글 작업을 하느라 한 시간도 잠을 자지 못했던 탓에
아래위 두 눈꺼풀이 서로 부둥켜안은 채 떨어지지 않으려 안 간 용을 다 쓴다.
다른 날 같으면 만사 뒤로 미뤄놓고 오후 늦은 시간까지 퍼질러 자면 그만이었겠지만 이날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을 준비하려고 그동안 적지않은 시간에 걸쳐 준비해온 이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 파리약을 먹은 듯 축 처진 육신을 일으켜 오전 11시경부터 서둘러 영혼 나들이 채비를 하기 시작했었다.
두 사람 몫의 준비를 하느라 밥을 지을 시간이 촉박했던 아내는 우선 허기만 면하자며
사온 몇 줄 김밥으로 깔딱 요기를 하고 밖을 내다보던 아내가 비가 내린다는 것이었다.
하늘에 해가 창창하게 떠있는데, 비는 무슨 비...?
혼자 이렇게 생각하며 좁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려는 순간,
이미 흘러간 세월 속에 어머니께서 지나가는 말로 하셨던 말씀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기름과 물이 공존할 수 없고 한데 어울릴 수 없듯 분명히 맑은 날과 흐린 날이 함께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어렵게 접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한 예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야시비가 내리는 날이라는 말씀이셨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이 공존하며 하늘에 분명히 밝은 해가 떠있음에도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는 것, 이러한 현상을 놓고 야시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곱고 아름다운 단어들을 다 놓아두고 왜 하필이면 야시비라고 이름을 붙였느냐고 어머니께 여쭈니
먼 옛날 야시 즉 여우가 사람의 혼을 빼놓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심한 변덕을 부렸다는 것인데 마른 날에 비가 내리니 변덕스러운 날씨라 하여 이름 붙여 야시비 라고 불렀다는 것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야시비를 접하니 내심 생각이 많아졌다.
물과 기름이 한데 어울릴 수 없고 공존할 수 없지만, 현재 이 지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은 선과 악의 공존 속에 살면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 속에 생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니, 더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아주 큰 죄를 제외하곤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으며 한데 어울려 생활하기를 원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남이 하는 선행은 아무리 큰 선행이라 하여도 아주 초라하고 보잘것없으며 누구나 해낼 수 있는 행위로 치부해 버리고 자신이 행한 작은 선행은 금세 감히 누구 하나 흉내 낼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선행으로 변신해 버리는 것이 현세에 사는 우리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마른하늘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야시비를 맞으며 장애우들의 택시라 불리는 두리발을 불러 탑승한 아내와 나는 1박 2일 피정을 할 장소인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녀원을 향했다.
보통 1년에 한두 차례씩은 갖가지 피정에 임하여 영혼이 배고파하지 않게 영혼의 양식을 채워주곤 했는데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을 핑계 삼아 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번 피정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한줄기 소나기가 기다려지는 대낮을 달려 잠시 후 성 베네딕토 수녀원 내에 속에 있는 성분도 은혜의 집에 도착하니 벌써 몇몇 복지회 가족들이 목발과 휠체어에 성치 못한 육신을 의지한 채 영혼의 양식을 얻어려고

미리 도착하여 피정에 임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였다.
본격적인 피정 일정에 들어가기 전 하룻밤을 묵어갈 숙소를 배정받아 세면도구를 포함한 갖가지 짐을 풀었고 지도 신부님께 이틀간의 피정 동안 유의해야 할 점과 피정 순서를 설명들었다.
피정의 첫 번째 순서로 복지회 지도 신부님이신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의 첫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고 이번 피정의 주제인 “탈리다 쿰” 소녀야 내가 말한다. 일어나라! (마르코 5, 41)에 대한 말씀이 있었는데 이 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 혼자만의 느낌이고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탈리타 쿰” 소녀야 내가 말한다. 일어나라 는 말씀이 줄곧 나태해지고 게을러져서 잠만 자는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로 느껴졌다.
강의는 우리 복지회 가족들 처지와 현실에 맞게 이어져갔고 신부님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씀은 그동안 굶주려 있던 영혼의 귓전을 파고들어 영원히 머물기를 청하는 간절한 기도로 변한 바 있다.


이 강의를 들은 후 조별 모임을 통해 강의 내용에 현재 우리 복지회 가족들의 신앙생활을 비교하여 보는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성 베네딕토 수녀원 수녀님들이 매일 바치는 저녁 기도에 초대를 받아 동참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을 부여받았다.
수녀님들의 저녁 기도에 참여하려고 숙소에서 수녀원까지의 거리가 몸이 성치 못한 복지회 가족들에겐 그렇게 짧다고 할 수 없는 거리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미리 지도 수녀님께서 숙제를 내어주신 바 있고 이 숙제는 복지회 모든 가족의 영성의 밑거름이 될 소중하고도 귀한 숙제라 여겨졌기에 이번 피정 기간에 강의를 맡으신 신부님들의 한 말씀 한 말씀 다 귀여겨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피정에 임하는 복지회 가족들뿐만 아니라 함께 피정에 임하며 가족들의 손과 발이 되어 생활해야 할 봉사자들,
그리고 양일간 자주 만나게 될 성 베네딕토 수녀원 수녀님들의 일거수일투족도 도 놓치지 않으려 나름대로 신경을 쓰다 보니 온 열성을 다하여 기도에 몰두하지 못한 채 수녀님들께선 하느님과 어떻게 대화를 하며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계시는가를 유심히 관찰하려 30분이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쪼개어 온 촉각을 바쁘게 움직였다.
비록 온 정신을 몰두하여 정성을 다한 기도를 바칠 수는 없었지만, 수녀님들께서 행하시는 기도의 소리는 들은 바 없어 잘은 모르나 아마도 천상의 소리가 바로 그 순간
수녀님들께서 바치시던 그 소리를 일컬어 천상의 소리라 표현해도 가히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정말 은혜롭고 영혼의 보배로운 시간이었다.


수녀원에서 마련해 주는 저녁식사를 하려고 가족들과 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물론 식사 전 지도 수녀님의 특별한 당부의 말씀이 계셨었지만,
가족들의 식사에 임하는 태도는 월 모임에서 보아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식사시간 내내 일사불란한 모습들에서 마음 뿌듯함을 느낀 바 있다.
특히 식사 후 빈 그릇들을 손수 분리하여 갔다 놓으라고 마련해 놓은 용기마다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빈 그릇을 직접 가져다 놓는 모습에선 “그래 저렇게 하면 될 것을” “아니 저렇게 할 수 있음에도 왜 그동안 받으려고만 하려 했을까?” 하는 자기반성과 후회하는 마음마저 갖게 하였다.
저녁식사 후 짧은 휴식시간을 보낸 후 가톨릭 부산교구 빈민 사목을 하시는 서유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의 강의가 있었는데
다른 가족들은 그 강의를 어떻게 듣고 어떠한 느낌을 받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강의를 통해 철거를 앞둔 절박한 삶 속에서도 절대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현 생활을 엿보았으며 그들의 삶 속에 현재 복지회 가족들의 삶을 접목시켜 본다면 다른 관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보고 말하자면
나름대로 고충과 시련이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복지회 가족들의 삶이 절망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서유성 (세례자 요한)신부님의 강의가 끝난 후 생활 성가로 우리 교우들의 영성의 안식과 휴식처가 되어주는 생활 성가팀 하늘씨앗과 함께 아가페가 이어질 무렵 복지회 어느 한 가족이 분위기에 맞지 않게 지도 신부님께서 노래 한 곡만 불러주십사 하고 청하였으니 “영성의 양식을 먹고 영성을 키워가는 자리에서 세속의 때가 묻은 노래(가요)를 논하다니” 하고 꾸지람도 하실 만 한데 꾸지람은커녕 그 가족의 요청에 따라 열성을 다하여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맛깔 나게 불러주셨다.
곧이어 이어진 아가페라는 순서에선 성가로써 우리들의 마음속에 이끼처럼 끼어 있던 모든 잘못된 것들을 말끔하게 씻어내어 올바른 피정의 길을 걷는 데 있어 도우미 역할을 해 주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어 나름대로 그동안 내 영혼 속에서 부패해 가던
나만의 죄와 악을 성가를 들으며 한 가지라도 더 찾아내려 애를 썼고 가족들 또한 제각기 자신도 모르게 쌓여갔던 영혼의 나쁜 찌꺼기들을 성가 한 곡 한 곡에 실어 보내려는 모습을 능히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잠자던 우리 영혼을 일깨워 부흥(復興)하려는 듯 생활성가팀 하늘씨앗 일원들도 본인들의 목이 쉬고 망가지는 것도 무시해 버리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열성을 다해 성가를 불러주었다.


아가페를 끝 순서로 이틀 중 토요일 일정을 마치고 피정에 참여한 모든 가족이 취침에 들어갔었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낮에 우리 부부에게 배당된 숙소는 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던 3층 방이었는데 방바닥이 아니라 1인용 침대로 되어 있어 아내가 생각하기에 사용하기 불편할듯싶어 2층의 침대가 없는 방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던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냉방 시설이 중앙집중식이라 여러 사람을 생각하다 보니 잠자리에 들 무렵 잠시 에어컨을 작동시켜 주곤 꺼야만 했기에 체질적으로 본디 열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선 기껏 해봐야 30분도 채 수면을 취하지 못한 채 하루의 까만 밤을 하얗게 뜬눈으로 지새워야만 했으나 처음엔 더운 날씨 탓에 짜증을 내며 창문을 열어 지나가는 바람의 덕이라도 볼까 하여 창을 열었지만, 그 얕은 생각마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심한 자동차 소음 탓에 시끄러운 것이 도가 넘어 기가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 밤 아내와 새벽 일찍 일어나 수녀원 주변 산길을 산책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터라 새벽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면서 곰곰이 묵상을 하니 전날 밤잠을 자지 못했던 것도 방을 바꾸게 했던 것도 나를 사랑하신 주님께서 나태해 졌고 게을러진 나에게 인내심을 기를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것이라 생각이 들어
비록 잠은 설쳤지만, 주님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다.
산책 후 대자연이 확 트인 곳에서 모든 가족이 모여 아침 기도를 바쳤고 곧바로 아침식사에 들어갔으며 아침식사 후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다음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의 짧은 강의와 함께 두 번째 나눔의 시간을 가지며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 어려움과 바로잡아 나아가야 할 점들을 대화로 풀어나아갔다.
나눔의 시간을 가진 후 세 번째 강의에 들어갔었는데 부산교구 해양사목을 하시는 오택수 (아우스딩) 신부님께서 분심없이 온전히 예수님과 일치되어 기도하는 데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는데 나 개인으로써는 신부님께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기도를 이미 체험해 보았던 터라 신부님의 강의 내용이 더욱 친숙하게 가슴에 와 닿았고
공인된 문인으로 여러 장르의 문학 활동을 하느라 잠시 저만치 미루어 놓았던 기도생활에 가책을 느꼈다.


폐부를 찌르는듯한 신부님의 강의를 뒤로하고 점심 시간이 되어 식탁 앞으로 다가가니
회원 중 한 가족이 “한 끼니 정도 안 먹으면 어때서 기어코 찾아 먹으려 하느냐?” 며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아침밥도 봉헌하여 먹지 못했는데 점심밥마저 먹지 말라고” 라며 농담으로 받아치며 인간적으로 반박은 했지만, 이 또한 그냥 흘려보낼 농담이 아니라 내게 아침식사를 봉헌했다곤 하나 올바른 봉헌인지 반성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식탁에 앉긴 했지만, 전날 밤 단잠도 자지 못했고 심한 더위에 점심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의 네 번째 강의 시간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숙소에 들어가 잠시 쉬다 나왔던 탓에 네 번째 강의를 귀여겨 담지 못함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빈첸시오) 신부님과 주님께 죄송한 마음을 표하며 월례회에 임하였고
파견 미사로 이틀간의 피정 일정을 무사히 마감할 수 있었다.


이번 양일간의 피정에 참여했던 모든 가족들이 나름대로 느낀 점도 있고 영성적으로 얻은 것도 많겠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피정에 참여했던 이들의 최종 목적은 “영적 양식을 찾아서”라고 단호히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또 다시금 이러한 기회를 허락해 주실지는 의문이지만, 이번 피정과 같은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여러 가지 사정으로 피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가족들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여 보배로운 영혼의 선물과 은혜로운 영적 양식을 취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