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청포도

松竹/김철이 2008. 9. 24. 17:06
♧ 청포도 ♧
 
 우리나라 사람들의 본성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것이 다른 민족들이 지
니지 못한 장점이자 단점이며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장점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예를 들어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앞뒤 일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급한 마음에 서둘러 의료 행위를 받을 수 있
는 곳으로 옮기다 보면 너무 서둔 나머지 다친 이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할 수도 있고 만약 다친 이가 신경이나 뼈를 다쳤을 경우라면 더욱 심
각한 일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과학문명의 세계를 향해 신발도 신
지 않은 채 급히 달려가는 듯한 요즈음 세대엔 안정하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이 불의의 사고와 늘 동행하고 있
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세상 곳곳이 위험물이라 제 발로 거리를
걷더라도 어느 순간에 본의 아니게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사고들로 인해 아침에 멀쩡하게 두 발로 걸어서 나갔으면 분명히 저녁
엔 나갔던 길로 되돌아 와야 하는 것이 순리인데 아침에 나갔던 이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병원에 누운 채 생사의 기로에 서서 남은 인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비운을 가슴에 쓸어 담아야 하는 입장에 놓
이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인데 이 불의의 사고들
중 너무 놀라 성급한 마음에 응급처치를 잘못한 탓에 남은 인생 평생을
장애인의 삶을 살아야 하며 이 삶이 성급함 때문에 후천적으로 살게 되
는 삶의 여정이다.

 인공위성이 수시로 지구와 우주를 오고 가는 현대에 살고 있고 하루
를 충실하고 단 1분조차 쪼개어 바삐 생활하며 시간이 금이라고 주장하
는 이들이라면 이 말에 수궁은커녕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 일축하고 말
것이다. 반대편에 서서 대변한다면 로켓트가 달나라 별나라를 오가는
시대에 느긋하고 천천히 라니 말이 아닌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쓴웃음만 지을 것이다.
 사실 요즈음 세상에 먼 옛날에 사셨던 우리네 조상처럼 느긋하고 여
유로운 생활을 하며 산다면 우리나라 국민이 지금 이 시대에 누리는 풍
요로움은 없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전 국민이
다 풍요롭고 다 행복한 생활을 누리진 못한다지만, 가난은 하늘도 구제
못 한다는 옛말도 있듯이 가난한 이가 있어 부유한 이가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다.

 아주 먼 옛날 나라의 힘이 없어 외침을 받았고 선량하기만 했지 용기
도 없고 겁많은 본성 때문에 다른 민족의 발아래 무릎을 꿇은 채 살이
미어지는 굴욕을 참아 삼켜야 했던 시절의 아픔 탓에 이를 악물고 밤잠
도 제대로 못 자고 불철주야 허겁지겁 뛰어왔던 덕으로 오늘날 몇 끼니
를 달아서 굶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8,15 해방을 맞아 기뻐하던 날들도 일순간 동족의 가슴에 총
부리를 겨누며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형제의 가슴에 총탄을 퍼
붓던 6,25 동란을 치러내면서 어리석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설양하고
여유로웠던 우리나라 국민성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성급해졌다는 것인
데 이로 인하여 조상 대대로 고유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오던 삼강오륜조
차 실종된 지 오래되었고 자신을 이 땅에 낳아 살게 해 주었으며 살과
피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효도는커녕 자기 인생살이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여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평생 최선을 다하여 부모님 은혜를 갚을지언
정 어릴 적 아버지 낮잠 주무시다 흐르는 콧물 한번 닦아준 은혜도 다
못 갚으며 어머니 옆구리에 끼고 개울 한번 건네준 은혜조차 다 못 갚
는다던 그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부모님의 은혜에는 눈감아
무시해 버리고 인적이 드문 외딴섬에다 자신의 살점을 때어 버리는 인
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인간답지 못한 몰지각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데
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사 모든 삶과 행동이 빠르고 신속하면 나무랄 것은 없겠고 서둘
러야 할 일이 있겠지만 급히 먹는 떡이 취한다는 말도 있듯이 어떤 일
이든 결정을 내릴 땐 조금만 더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면 큰 실수를
행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유를 가지고 너그러운 삶을 사셨던 그 옛날 조상이 존경
스러운 마음마저 생기는 요즈음이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고 바쁜지...
한 걸음 돌아가면 어디가 덧나는지 한 발짝 쉬다 가면 흘러가는 세월이
멈추기라도 하는 것인지 우리네 조상은 그렇게도 여유가 넘치고 어쩌면
그렇게도 느긋한 생을 사셨을까? 솔직히 그 어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아무리 급박한 일을 당하여도 칼날처럼 빳빳한 흰 도포 자락에 긴 담
뱃대 입에다 문 채 아랫배 약간 앞으로 내밀고 두 팔 뒷짐 지고 양반걸
음으로 여유롭고 느긋한 자세로 천천히 걸으며 세상살이를 음미하시던
그 삶을…. 해서 난 과일 중에 청포도를 가장 좋아한다.
 세상 온갖 과일들이 제맛과 색깔을 내려고 불과 몇 달만 제외하곤 거
의 1년 내내 양지바른 곳에서 햇살을 쪼이며 영양분을 습치하는 반면에
집에서 청포도 나무를 길렀던 어릴 적 기억으로는 청포도만큼은 연중
초와 중반에는 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제 존재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색깔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익을 때 맛을 보아도 설익어
도 나름대로 특성 있는 맛을 내는 다른 과일들의 맛에 비해 이게 무슨
맛인가 할 정도로 싱겁고 밋밋했던 맛이 늦가을로 접어들면서부터 온전
한 제맛을 내기 시작하여 그 맛은 어떤 과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당도가 높고 향기마저도 그 어떤 과일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할 정도의
짙은 향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세상 많은 사람이 우선 달콤하고 맛있는 삶보다 시간이 조
금 걸리는 한이 있어도 너그럽고 여유 있는 자세로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참고 기다리는 삶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 가져봄은 정녕 이
루지 못할 소망에 불과한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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