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기축년(己丑年) 소해는 소처럼 살려 한다

松竹/김철이 2009. 12. 22. 16:33

돼지해였던 기해년(己亥年) 묵은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이제 새로운 해인 2009년의 여명(黎明)은 밝았는데 세상에 남겨 놓을 것 하나 없는 한스러움에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실감하며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를 맞이하니 기억 속 희미하게 퇴색해 가는 실화 몇 가지가 떠오른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전해 들었던 얘기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120여 년 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께서 경상북도 경주에서 큰 술도가(술 도매상)를 운영하셨고 직접 인근 이웃 마을까지 술 배달을 하셨다고 하는데 많은 술을 운송하려면 달구지에 실은 채 험한 제(산 고개)를 몇 개씩이나 넘어서 왕래했어야 했다고 한다. 술 배달이 많아 귀가 시간이 늦을 땐 정말 등골에 식은땀이 몇 차례씩 흘러내렸다고 한다. 게다가 현대 과학문명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아주 먼 옛날인데다 호랑이가 실존했던 시대라 호환(虎患)을 당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기에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지옥과 천국을 몇 차례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날은 유난히 술 배달이 많아 열두 개의 달구지에 술통을 싣고 열두 마리의 소에게 달구지를 끌게 하여 술 배달을 다 하고 나니 이미 해는 서산에 걸려 있고 마음이 초조해지신 외할아버지께선 귀가를 서둘렀는데 두 개째 제(산 고개)를 넘으려 할 때 그만 호랑이와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산 중턱에 버티고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호랑이의 눈에서 나오는 광채는 눈이 부실 정도였고, “어흥!” 하며 외마디 소리로 온 산을 호령하는 호랑이의 포유(布諭)는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고 한다.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선두에 서서 달구지를 끌며 무리를 이끌던 소와 호랑이의 죽었으면 죽었지 결사코 양보할 수 없는 혈투가 벌어진 것이다. 본래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달구지를 끄는 맨 서두의 소는 가장 용맹스럽고 힘이 세고 충정스러운 소를 세운다고 하는데 선두에 가던 소가 호랑이를 견제하며 외할아버지께 자신의 몸과 달구지에 묶인 끈을 풀어달라는 듯이 “음매!~”하고 큰 울음을 울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얼른 눈치를 알아차린 외할아버지께선 끈을 풀어주자 소는 순식간에 호랑이를 향해 돌진해 나아갔고 소와 호랑이의 치열한 혈투는 어림짐작으로도 두 시간이 훨씬 넘도록 전개되었다 한다. 외할아버지께선 소를 도와줄 아무런 방법도 없고 아무리 담이 큰 어른이라 하여도 사람 본연의 보호 본능이 있는지라 아름드리 고목 뒤에 숨은 채 소에게 기와 용기를 북돋워 주려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총동원하여 “우리 누렁이 잘한다! 우리 누렁이 힘내라!”라며 응원을 했더니 소가 용기백배(勇氣百倍)하여 싸운 결과 피투성이가 된 채 소의 승리로 소와 호랑이의 치열하고 생사를 건 혈투의 막은 내렸으며 온몸에 상처뿐인 소는 자기 주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온 힘을 다하곤 주인을 향해 마지막 인사로 눈물이 잔뜩 고인 큰 눈을 끔뻑이며 끝내 죽어가더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실화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람에게서 받은 훈도(訓導) 보다 몇 곱절 더 큰 깨우침을 느끼게 하는데 아주 먼 옛날부터 이와 비슷한 실화나 전설 속 이야기들이 무수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9년 전 그러니까 내가 여섯 살 때로 기억이 되는 어느 날 그날도 변함없이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 줄곧 몇 년째 다니던 부산 메리놀병원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당시 나의 제2의 고향인 연산동엔 대중교통 수단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기에 치료를 받고 나서 전차를 타고 전차역이 있던 거제동에 내려 집이 있던 연산동까지 걸어서 귀가하곤 했었는데 전차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아 포장이 되지 않은 길섶이 뽀얀 흙먼지로 뒤덮여 한 치 앞도 가름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와 사람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추격전이라 하니 사람이 소를 쫓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전혀 아니다. 소가 도망가는 사람을 향해 두 개의 뿔을 세운 채 필사적으로 달려들었고 도망가던 사람은 행여 소의 뿔에 바칠까 봐 꽁지가 빠져라. 뛰고 또 달리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나는 겁에 질려 어머니의 등에 바삭 엎드린 채 오금이 저려 두 다리에 안간힘을 다 주어 어머니의 허리를 감싸 안았으며 어머니께서도 혹여 성난 소의 뿔에 받혀 다칠까 싶어 길모퉁이 구멍가게로 들어가셨는데 소가 그렇게 미친 소처럼 날뛰게 된 이유는 단순했었다. 소의 주인이 연산동에 있는 자신의 논을 갈려고 소에 고삐를 채워 몰며 논을 향해 가던 도중에 길가 술집에서 술내기 장기를 두던 친구들을 보자 평소 놀기를 좋아하던 소의 주인이 훈수를 두며 장기판에 끼어들었고 무분별한 훈수는 곧장 시비의 불씨로 변해 불이 붙었으며 곁에 있던 소가 대뜸 주인의 친구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생각이 부족한 짐승이라 그랬든지 아니면 아주 가까운 거리도 볼 수 없는 근시라 그랬든지 모르는 일이지만 누구의 잘잘못도 가릴 사이 없이 주인을 향한 충정 하나로 주인과 다투던 이에게 결사적으로 달려들었던 충성심만큼은 높이 살만한 것이라 여겨진다.

내가 아홉 살 되던 해 여름, 어머니와 함께 이웃에 살다 경상북도 영주로 이사하신 절친했던 아주머니댁에서 여름휴가를 겸해서 며칠 쉬다 온 적이 있다. 이웃에 살았을 때부터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친자매 못지않게 가깝게 지내온 터라 양쪽 집안이 부담을 갖지 않고도 편히 쉬다 올 수 있었다. 아주머니댁은 시부모님 대에부터 농사를 지으셨는데, 긴 세월 가족처럼 농사일을 도와온 누렁이 황소 한 마리가 있었다. 누렁이는 힘도 셀 뿐 아니라 주인에게 향한 충성심도 유별나서 누군가 제 주인에게 농담삼아 싫은 소리를 하여도 큰 눈을 무섭게 굴리며 뿔을 세우더라는 것인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 기운도 쇠퇴하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지는 법이라 누렁이도 예외가 될 수 없더라는 것이다. 누렁이 나이 열여섯 살 다른 농가 같으면 팔아버려도 벌써 팔아버렸을 터, 도축장으로 끌려갔어도 벌써 끌려갔을 터 그러나 누렁이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단다. 워낙 영리하고 충성심이 강해서 피붙이를 떠나 보내는 것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마침내 누렁이와 영영 못 볼 이별의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공개옵게도 그 시기가 어머니와 내가 그 댁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그 댁 할아버지께서 괜히 일도 못하는 소를 놔두고 있다며 노발대발하시자 하는 수 없이 소시장에 내다 팔기로 했는데 소가 너무 노쇠하여 사려고 드는 이가 없어 누렁이를 데리고 며칠을 소시장을 들락거리다 포기상태에서 하룻밤을 맞았으며 그날 밤, 그 댁에 도둑이 들어 그 댁 아저씨께 발각되자 낫을 든 채 아저씨께 덤벼들어 아저씨의 몸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되었고 상처를 입고도 굴하지 않고 대항하는 아저씨와 도둑 사이 격투는 생사를 건 치열한 혈투로 돌변해 갔다. 이때 외양간에 고삐도 채워지지 않은 채 힘없이 누워 있던 누렁이가 갑자기 어디서 그런 큰 힘이 솟았는지 외양간에서 벼락같이 뛰쳐나와 왕방울 같은 두 눈에 불을 켠 채 도둑을 향해 비호(飛虎)처럼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가족 대부분이 힘없는 여인들이거나 노인, 아이들뿐이었던 터라 아저씨와 도둑의 혈투를 손 놓고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은 누렁이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났던 일이라 어리벙벙 하는 사이 도둑은 누렁이의 뿔에 받혀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으며 누렁이 역시 마찬가지로 노쇠한 몸으로 그렇게 심한 혈투를 벌였으니 멀쩡할 리 없었다. 도둑을 쓰러뜨린 누렁이,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기진맥진하여 마당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었다. 그 후 누렁이는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온 가족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숨져갔다. 

내가 몸소 체험했던 소에 관한 세 가지 실화에서 사람으로서 말 못하는 한낱 짐승에 불과한 소에게서 받은 교훈은 사람에서 받았던 그 어느 교훈보다도 더없이 큰 교훈으로 남아 언제까지나 내 영혼과 함께 숨 쉬며 생활하게 될 것이다.

세상 속엔 실화(實話)든 설화(說話)든 수많은 이야기가 계절에 상관없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설화일 경우 사람의 입으로 지어낸 것이라 들을 당시엔 매혹적이고 달콤하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시킬 능력을 지니지 못하였지만, 실화일 경우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 인물이나 사물이 체험한 체험담을 전해듣는 것이라 강요하지 않아도 능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켜 눈물까지 흘리게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아온 바 있는데 세 번째 이야기 역시 실화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고 아무리 매정하고 냉정한 폭군(暴君)의 신금(宸襟)일지라도 능히 울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분명히 인성(人性)을 지닌 사람이라 하여도 인간 본연의 도리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기본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과 자신을 세상에 낳아주신 부모님께 효행(孝行)을 다 하지 못하고 패륜(悖倫)을 밥 먹듯 저지르는 사람, 그리고 같은 부모 슬하에 같은 피와 살을 받고 태어난 자신의 형제들 사이에 우애(友愛)를 다 나누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 손가락질을 하곤 하는데 만물의 영장(靈長)이란 칭호까지 지닌 사람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핀잔을 들었어야 하겠는가…

이 모든 행실(行實)과 행위(行爲)의 근본적 책임은 이 세상에 올 적에 한 영혼과 육신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이 져야 할 것이고 늘 행실을 바르게 지니지 못한 죄 또한 그들의 몫일 게다. 올 고른 행실을 지니지 못한 이들이 쉽게 하는 말이 있다. 본인의 본래 천성은 착하고 선한데 이놈의 몹쓸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흘러가는 세상 탓으로 돌리며 허공에다 대고 삿대질을 해 댄다. 이 모두가 제 탓인 줄도 모르고… 사람들이 크게 다툴 때를 보면 서로 상대에게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며 언성(言聲)을 높이는데 이때, 다섯 개의 손가락 중 하나는 하늘을 가리키고 또 다른 하나는 상대방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세 개의 손가락은 누굴 향해 가리키는가… 다섯 개의 손가락 중 세 개는 바락바락 악을 쓰며 상대를 향해 마구 삿대질을 해 대는 자신을 향해 가리키고 있질 않은가 말이다. 결국, 내가 아닌 네게 아무리 허물이 크다 한들 네 허물이 하나라면 내 허물은 셋이나 된다는 말이다. 

100m 앞조차 못 보는 근시의 동물인 소도 자기 주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자기 자신의 목숨을 헌 신짝 버리듯 하는데 하물며 만물에 영장이라 일컫는 사람이 아무리 남을 딛고 서지 않으면 출세의 가도를 달릴 수 없는 세상이라지만, 아무리 회유(懷柔)와 배신(背信)이 독 판을 치는 시대라지만, 명세기 어찌 사람이 소보다 못할 수가 있단 말인가… 평생 등에 멍에를 지고 비록, 풀을 뜯으며 사는 짐승이라 그나마 혹한이 극성을 부리는 겨울철엔 뜯을 풀조차 없어서 여물로 생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미물(微物)인 한낱 짐승에 불과하지만, 주인에게 목숨 건 충성을 다 하다가 주인의 신상(身上)에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리면서까지 주인의 목숨을 구하며,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 뼈까지도 내가 아닌 너를 위해 다 내어주는 소의 헌신적인 봉사의 삶을 사는 소의 생을 되새겨 2009년 기축년(己丑年) 소해는 소처럼 충직(忠直)한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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