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기축년(己丑年) 소 해에 비는 소망

松竹/김철이 2009. 12. 24. 11:01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세월의 무상함을 피부로 느끼며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간 2008년과 순간의 보신각 종소리 몇 번으로 영영 보지 못할 아쉬운 이별을 하고 2009년 기축년과의 만남의 포옹을 했었지만, 사람들은 왜 해마다 반복되는 해맞이를 하는 것일까…말로는 마치 한 마리의 용이 이무기의 허물을 벗고 하늘을 향해 용트림하며 승천(昇天)하는 듯한 모습의 해돋이를 보며 한 해 동안 작게는 가정의 행복과 가족들의 건강을 위하고 크게는 나라와 국민의 평화,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세계 모든 민족이 아주 작은 분쟁조차 없는 세상에서 참 평화를 누리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는 모두가 허상이자 허구라는 것이다. 

간절하게 바라는 소망, 소원거리가 있고 또한, 빌어야 할 소망이 그렇게 절실하다면 왜 굳이 한 해의 일출을 보려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가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거리에서 새롭다 여겨지는 한 해의 해마 중을 하려고 수많은 자동차를 동원해야 하며 자동차가 없는 서민층에선 한 해의 일출을 보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이웃에 얹혀서라도 해맞이를 하고야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누구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떠오르는 새해를 바라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고 말겠다는 생각 탓에 해가 가장 먼저 뜨며 아침이 가장 이르다는 남해의 끝 간절곶이나 경북 포항시에 있는 호미곶, 강원도 강릉시에 자리 잡은 정동진은 물론, 여러 지방의 해변은 1년에 한 번씩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며 조용해야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해변을 심한 몸살을 앓게 한다. 정말 우습다고 여겨지는 것이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에서 해맞이하고 싶고 소원을 빌고 싶다면, 정작 우리나라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뜬다는 독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뜬다는 동해안의 마운트 히쿠랑이로 찾아갈 것이지 왜 굳이 좁디좁은 땅덩어리 위에서 북새통을 이루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현실이다. 

한 해의 무사함을 빌고 싶으면 굳이 일출이 시작되는 곳을 찾지 않아도 각자의 마음으로 그야말로 조용하게 얼마든지 바라는 소망을 빌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대자연을 생 몸살이 나게 하여 아프게 하지 않고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고도 능히 바라는 소망, 소원거리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녕 욕심 없고 내가 아닌 너를 위한 기원(祈願)이라면… 

나라 안팎으로 유난히 사건 사고도 잦았고 이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어 아파하며 남몰래 속 울음을 울었던 이가 많았던 기해년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해인 기축년(己丑年)을 맞이하였으니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 덧없고 유수(流水)같은 세월에 딸려 보내고 올 한 해 동안은 나라 안팎은 물론 민족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며 늘 생각하는 가치관도 다르겠지만 온 세계 민족이 사상(思想)과 이념(理念)의 벽도 허물고 부강(富强)한 민족과 빈곤(貧困)한 민족의 오래된 앙금도 말끔히 씻어내며 부유(富裕)한 국가와 빈곤(貧困)한 국가 사이의 해 묶은 골도 매워서 전 일류가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과 억약부강(抑弱扶强) 즉, 약자를 누르고 강자를 도와주는 세상이 아닌 억강부약(抑强扶弱)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주는 세상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일념(一念)을 기축년(己丑年) 새 달력 위에 한 장의 수채화를 그려본다.

허황된 꿈도 될 수 있고 영영 신기루가 되어버릴지 모르는 헛된 공상(空想)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누가 누구를 무시하고 누가 누구를 업신여기지 않은 세상이 아닌 또, 누구는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는데 누구는 약의약식(惡衣惡食)하는 세상이 아니라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서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살맛 나는 세상을 2009년 기축년(己丑年) 첫 장에 걸어둔다.

2009년 기축년(己丑年) 일 년 내내 이룰 수 없을 몽상(夢想)만 꾸며 살고파서…

본디 돼지라는 짐승은 식성이 잡식성인데다 다른 동물에 비해 식욕이 뛰어나게 왕성하며 욕심이 많아 옆도 거들떠보지 않고 뭐든지 먹어치우는 습성을 지녔다. 도시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에서 생활하다 7년 전 악연의 손에 이끌려 2년여에 걸쳐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창구리에서 생활했었는데 대중 교통편이라고 해야 고작 인근 몇 개의 마을을 운행하는 버스가 하루에 네 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 시골이라 농업을 위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기에 소와 돼지 등을 단순 돈벌이가 아닌 가족과 같은 의미로 사육하고 있었다. 그 당시 도시에서와는 달리 소와 돼지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소와 돼지의 습성과 생태를 잠시 비교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소는 충정스럽고 싫어도 주인이 고삐를 이끄는 대로 묵묵히 따르지만 돼지는 어떤 길을 갈 때 주인이 뒤에서 길잡이를 해주어도 잠시만 방심하여도 엇길로 가려 하는 본능적 습성이 있었고 소는 여물을 조금 늦게 주어도 그저 침묵하며 기다리지만 돼지는 먹이를 조금만 늦게 주었을 때 제각기 목소리를 높여 아우성들이었다.

이 욕심 많고 성급한 모습을 굳이 돼지에게서만 볼 수 있는가 그건 결코 아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요즈음 사람이 사는 현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이다. 그것은 내가 될 수도 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 인간의 인력으로 창조되고 사육됐던 모습들일 게다. “좀 더 빨리 좀 더 쉽게”라는 표어를 내걸고 박차를 가해온 부산물(副産物)들일 게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만 하여도 그렇다. 본래 우리나라 국민성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해 오다 신민지 시절 일제로부터 불어온 개혁 바람의 여파로 조급해 지기 시작한 성품이 개발도상국으로 향해 걸어가는 시점에서 못 먹고 못살던 시절은 까맣게 잊은 채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으로 점차 변하더니 지금은 아예 노골적으로 변해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국민성이라 말할 수 있다. 한 걸음 늦게 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한 품이라도 덜 가지면 천지가 개벽이라도 하는 듯, 돈과 부를 위해서라면 기를 쓰고 한 치라도 더 높이 오르려 하며 한 품이라도 더 많이 가지려 한다. 어른들도 이럴진데 어른들을 거울을 삼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가족계획이라 할 수 있지만,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적게 낳아 기르는 통에 한층 더 자녀를 귀하게 여기게 되었으며 귀하게 길러야겠다던 부모들의 생각이 정도의 길을 걷지 못해 무조건 식의 사랑을 주므로 오히려 아이들이 세상에 혼자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 영혼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고 육신은 욕심으로 가득 차서 안하무인격으로 변해 간다는 것이 개탄(慨嘆)스럽기 그지없다.

절망이 있으면 분명히 희망도 존재하기에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과 국가가 하나로 뭉쳐 소처럼 과묵하며 여유로운 몸짓의 삶을 추구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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