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74

버려질 것들에 대하여|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버려질 것들에 대하여 松竹 김철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 옆자리를 지켜준 갖은 욕심들 죽어 저승에서도 함께 할 것만 같았는데 세월은 널 두고 혼자 오라니 쌍둥이 형제 눈 내리는 허허벌판에 버린 듯싶구나 변하는 게 세상이라지만 조상 대대 몸 붙여 살아온 이 땅에 뭉칫돈 보따리로 싸온 코 큰 이들 떼를 지어 몰려와 삼천리금수강산 통째 삼키려 하니 백성 된 이 몸 지하의 나라님께 몸 둘 바 모르겠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던가 언제부터 커피에 양담배 입에 댔던지 곰방대 보리숭늉 찾을 길 묘연하니 뿌리 없는 민족혼 어디에 잠들 건지 혼백의 그림자 뉘라서 찾으리

작품 발표작 2021.04.24

장기타령|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장기타령 松竹 김철이 인도 고대 어느 국왕의 지엄하신 명을 받들어 고승의 뇌리(腦裏)에서 나온 슬기로운 놀이가 말도 타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빈다. 좁은 판자 위에 진을 치고 군막(軍幕)을 세우니 군졸들 창칼도 들지 않고 영토를 넓혀간다. 장이야! 멍이야! 느티나무 그늘 명당(名堂) 인양 자리 잡아 밉지 않은 훈수 속에 한순간 생을 즐긴다. 선수(先手) 후수(後手)를 통하여 청과 홍이 편을 가르고 인간의 사고능력을 빌려 국적 없는 국경을 넘나든다.

작품 발표작 2021.04.17

귀향|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귀향 松竹 김철이 열 길 우물 속은 채울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채울 수 없는 것 갖은 욕심의 굴레가 돌고 돌아 만개하지 못할 꽃을 피우려 한다. 물처럼 바람처럼 살려 하는데 살다 보면 개인 날 흐린 날도 있듯이 구름 되어 흐르는 인생길에 기쁜 날 슬픈 날도 찾아올 테지 노을 진 서산이 아름다운 뜻은 인생들 한평생 잘 살아 고향 가는 그 길에 피어지지 않을 꽃 한 송이 피우라시는 하늘의 소망이라 하겠네

작품 발표작 2021.04.10

아침을 보라|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아침을 보라 松竹 김철이 어눌한 몸동작 지난 세월 되돌리지 못하여도 가슴속 꿈틀거리는 포부는 암흑의 둥지를 깨고 나와 드넓은 세상 위에 화려한 꿈의 나래를 펼친다. 고요한 아침을 부르다 지친 병든 새들의 외침이 온 동네를 들썩들썩 마침내 푸른 창공에 나부낄 깃대를 꽂겠지 조상님들의 혼과 얼이 살아 숨 쉬는 동래 우리도 여기에 삶의 끈을 풀어놓고 동래 학춤 걸판지게 추어보리라 갠 날도 흐린 날도 새로운 아침은 밝아오기에

작품 발표작 2021.04.03

소망|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소망 松竹 김철이 너른 게 세상이라 뭇 인간의 속물적 마음속을 가출한 존재들 허공 위 미라가 되어 묻힐 무덤도 찾지 못해 수 천 년의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어떤 모습에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색깔도 향기도 오리무중 이 땅의 역사가 말해주듯 고목에 꽃이 피고 진흙에 집을 짓는 삽도 하나 없이 삶의 무덤을 판다. 갖은 욕심 주체할 수 없어 세상 탑돌이 날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한 치도 못 되는 마음속 채우지 못해 돌아도 돌아도 끝이 없는 세상 쳇바퀴 돌린다. 물레방아 비 내리고 물 흐르면 절로 돌지만 인생 물레방아 소망의 끈을 잡고 늘어져야 겨우 돈단다.

작품 발표작 2021.03.27

숲|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숲 松竹 김철이 심술궂은 시어머니 눈 밖의 며느리가 볼수록 언짢아서 변덕이 가마솥 죽 끓기라 여우비 이른 봄 임맞이 닮은 모습으로 어린 봄 숲에 내리누나 멀리서 들려오는 소나기 하소연이 허공을 새로 질러 구멍 난 물동이를 가출한 물방울들 모심는 농심으로 볍씨를 심어가듯 고목 숲 언저리에 명목 모를 줄을 잇더라 걸식으로 주린 배 채워갈 거지 신세 애써 면케 해준 그 은혜는 뒷전에 미뤄놓고 제 본분 잊은 채로 벼 이삭 이불 깔아 길게 누운 가을 허수아비 허황한 가슴 숲에 가랑비 처량하구나 무슨 사연 그리 많아 어제는 활짝 웃던 초겨울 높은 하늘이 오늘은 울고 싶어 제빛 표정 너부러지게 살 언 장미꽃 붉은 숲에 진눈깨비 희게도 내리더군

작품 발표작 2021.03.20

꽃씨|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꽃씨 松竹 김철이 세상도 몰래 꽃씨 하나 심었지요 어떤 꽃을 피울지도 모르면서 마음의 뜰을 열어 꽃씨 하나 심었지요. 세월이 부단히 흘러 이다음 어느 계절에 이다음 어떤 향기로 남을는지 누구도 모르지만 그것은 그 시대 그 계절을 맞는 자들의 몫이기에 하나 남김없이 돌려주고파 내 숨 쉬는 이곳에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천만 송이 꽃으로 천만 가지 향기로 빈 가슴 만개(滿開)할 꽃씨 하나 심었지요.

작품 발표작 2021.03.13

밤하늘 별처럼|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밤하늘 별처럼 松竹 김철이 그대는 아는가? 밤 하늘 별이 빛나는 뜻을… 낮과 밤이 분명함은 제자리 제 본분을 다하라는 뜻이리 어두운 밤을 살아야 하는 별들의 표정을 살펴보노라면 모두가 어둠을 밝히려 우주를 떠돌지 않는가 가슴이 허황한 그대여! 밤 하늘 별이 되어 어제 일은 어제에 묶어놓고 오늘 일 오늘에 맡겨 내일을 향해 걸어가는 삶을 사소서

작품 발표작 2021.03.06

여명기(黎明期)|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여명기(黎明期) 松竹 김철이 덜 녹은 잔설은 언덕에 노는데 날 부르는 목소리 산 계곡 메아리로 봄을 찾아 큰 강을 이룬다. 길섶에 핀 민들레 옥살이 사슬을 풀고 시절의 목멘 사연들 다리를 놓아 새하얀 표정 지어 홀씨 하나 열 사랑을 전한다. 수평선 저 너머로 태양이 피듯이 손에 손 마주 잡은 우리 세 치 가슴에 열하나 태양 동산에 피우려 삼각끈 달리기 날이 저문다. 서산의 노을은 곱게도 지지만 뭇 사람 마음의 노을은 자칫 안개꽃 무리로 지기에 일곱 빛깔 무지개 지엄하신 여명기 명을 따라 하나로 묶는다.

작품 발표작 2021.02.27

개골창|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개골창 松竹 김철이 고향 잃은 날갯짓 허기가 지듯 기억 속 고향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벌레 한 마리 더 먹고파 철새의 부리는 심히 허둥거린다. 송사리 작은 물질 봄을 찾으러 살얼음 사이마다 엉거주춤 낯이 선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흐르는 물살 급행열차를 탄다. 기지개 흐드러지고 주춤주춤 새 옷을 갈아입는 버들가지 찰랑찰랑 연초록 긴 머리 꼬랑이 작은 물에 진초록 염색을 한다. 심통이 난 꽃샘바람 물가에 홀로 앉아 못다 부린 심술을 부리는데 선잠 깬 청개구리 덜 떨어진 눈 비벼 봄 처녀 찾아간다.

작품 발표작 2021.02.20

가슴 아프게|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가슴 아프게 松竹 김철이 다시 못 올 그 세월이 사무치게 그리워 이 한밤 몇 잔 술에 취해보지만 소용없는 눈물 자락 내를 이룬다. 다시 한번 그 모습이 목이 메도록 보고 싶어서 못내 잡지 못할 옷자락 잡아보건만 아픈 상처 가슴을 열어 소금을 뿌리고 야속한 그 시절은 돌아앉아 손만 내저을 뿐이니 이이 타 좋다 할 땐 뿌리치고 저토록 싫다 할 땐 매달리는지 아무리 몸부림쳐 봐도 이젠 해도 저물고 달도 기울어 황혼이라 울며 가는 저 세월 흐르는 눈물조차 쉬 닦지 못한다.

작품 발표작 2021.02.13

간양록(看羊錄) 그가 설 곳은|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간양록(看羊錄) 그가 설 곳은 松竹 김철이 오나가나 힘없는 민족 내 생각은 내 생각이되 개처럼 끌려가던 그 신세 차라리 피를 토해 노을이 되었으면 그래도 좋을시고 숨이라도 붙어있으니 나라 사랑 민족 생각 일각도 놓지 않았네 사지 속 뼈를 꺼내 붓대 만들고 머리털 절로 뽑아 붓솔 빚으니 도포 자락은 한지가 되어 피로 써내려가는 영영 죽지 않는 백의민족 넋이 되었네 이 희생 그 누가 보상하리 먼 훗날 후손들마저 제각기 살길을 찾으니 민족성도 자긍심도 행방불명 간양록 슬픈 심로(心勞) 지하에서 울더라

작품 발표작 2021.02.06

아랫물|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아랫물 松竹 김철이 겨우내 혹한의 오랏줄에 묶여 무심히 흘러갈 자유도 잃었는데 늘 솔 길 계절의 선봉장 되니 임 향한 걸음은 무작정 흐른다. 송사리 꼬리 짓 성가시기만 한데 늘 같은 표정 사랑이 넘치고 갖은 생명 모정으로 보듬어 정처 없이 대자연 상경을 한다. 은행잎 시절의 연륜으로 물들고 파랑새 울음 더 외로운데 배부른 물길 못내 아쉬워 자꾸만 뒤돌아 보이니 빨간 단풍잎 물이 든단다. 엄동설한 시린 눈길 싸라기 모습 닮아 온 누리 희끗거리고 조급해진 물심은 아래로 달음박질 세월 따라 꽃가람 향해 내달린다.

작품 발표작 2021.01.30

남해|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남해 松竹 김철이 남해 해변 황혼 빛 노을이 물들어 나그네 시선을 통째로 빼앗아 날로 삼킨다. 저 멀리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하루의 마지막 태양이 부끄러워 고개 떨구게 한다. 티 한 점 없이 드러나는 물밑이 마치 처녀의 속살을 보는 듯 얼굴이 달아오른다. 무심히 흘러갈 해변 초저녁 달빛마저 길손의 마음을 희롱하듯 더없이 밝다. 지척인 양 가깝게 느껴지는 밤바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금세 소라의 밤 이야기가 들릴 듯싶다.

작품 발표작 2021.01.23

대황|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대황 松竹 김철이 동녘에 해 떠 온다. 질풍노도 애마 삼아 물결 위에 길을 닦고 망망대해 둥지 삼아 편안한 밤을 보내니 태평양도 대서양도 작은 몸짓 쪽배가 누빈다. 세상은 늘 불안한 걸음 어눌한 표현 눈길도 주지 않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네 바퀴 발자국은 마음속 유리벽 허물러 달린다. 홀로 나온 소풍길 외롭지 않네 하염없이 나부끼는 봄날 벚꽃의 화려한 표현도 억지를 부리듯 가을 길섶에 나뒹굴 가랑잎 무거운 침묵도 우리의 동반자 될 테니까 모리배 천지에 내맡겨진 우리 한결같은 오뚝이 정신 가슴에 깊이 새겨 넘어져도 일어나고 밀쳐내도 한 걸음 더 다가서서 칠, 팔월 대황으로 피겠네

작품 발표작 202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