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74

물밑|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물밑 松竹 김철이 민심이 천심이라 귀 막고 눈 가려도 들리는 건 서민층의 아우성이니 회전의자 돌리는 자 귀 기울여 들을지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불능이라 뒷짐 지고 먼 산만 보지 말고 인고로 신음하는 이들 가슴으로 품어 보기를 천지신명 빌라시면 개 앞인들 못 빌까나 산 넘고 물 건너 노략질하는 왜구는 못 본채하고 제 나라 제 백성의 건언(建言)은 귀 밖으로 듣는가 제가 잘나 장다리냐 시대 좋아 장다리지 장다리는 한 철이고 미나리는 사철이라 물밑 같은 양심만은 팔지 마소

작품 발표작 2021.08.07

별|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별 松竹 김철이 별은 무리 지어 노래를 부른다. 어둠의 역사 속에 사라진 뭇 인간의 이름표도 고개 돌려 외면한 채 멀어져 가고 우물 속 물 한 모금 길어 올리지 못해 목 타는 달의 갈증조차 달래주지 못하면서 아련한 옛이야기 저 멀리 들리는데 대를 이어 불러줄 장인의 혼은 살풀이도 못 한 채 허공 속 이슬로 사라지리 노래의 가사는 간데없고 아픈 사연 줄을 지어 하룻밤 소곤대다 새벽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간다.

작품 발표작 2021.07.31

굴비|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굴비 松竹 김철이 입바르고 올 고른 선비들 오랏줄 한데 엮어 귀양살이 떠나는 그 눈물이 짜구나 옛 시절 자린고비 햇병아리 물 머금듯 밥 한술에 한 번 올려다보니 고문받는 죄인도 아닐 터 새끼줄에 매달려 도는 그 신세 가련하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보릿고개 그 시절 한 토막 구워 밥상에 올려놓는 날이면 천하제일의 부자가 무색하고 눈치 없는 자식들 환호성 온 천지 진동하더라 세월도 흐르고 시대도 바뀌었지만 천하(天下) 일미(一味) 그 맛이야 어찌 쉬 변하랴

작품 발표작 2021.07.24

무효(無效)|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무효(無效) 松竹 김철이 세상 천하 둘도 없는 인생길에 훼방꾼 포장되지 않은 길섶 돌멩이인데 걷어찰 발이 없으니 고삐에 끌려가는 소 신세와 같구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단다 단감이 달다 하여 껍질째 먹지 마라 높은 당도 속 농도 깊은 극약 물질 손꼽아 널 기다릴 터 하룻밤 백만장자 꿈길에서 날 오라 손짓하던 부귀와 영화 몸짓을 뿌리칠 수 없어서 쫄랑쫄랑 따라갔더니 무쇠 팔 천하장사 날 안아 내치더군 아파라 세상살이 고된 매질에 피 흘린 내 인생이여 하늘의 뜻대로 내 인생 무를 수 있다면 천하에 고하노니 상처뿐인 내 인생 무효라 하겠네.

작품 발표작 2021.07.17

비 오는 날의 수채화|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비 오는 날의 수채화 松竹 김철이 갖은 모양의 추억들이 몇 방울 비로 떨어져 대지 위에 초목 같은 모습으로 갖은 영혼 터전 삼아 무수히 쌓여간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세상 모든 생명의 모정이 되어 잘 나고 못 난 것 구별 없이 공평하게 내리는 하늘의 큰마음 닮아 아무리 작고 미물 같은 존재라 하여도 늘 변치 않는 향기로 남기로 원하신 그 가르침의 물줄기 따라 음계조차 분명치 않을 물의 소나타 악보를 적겠네 인간사 모든 진리 놓아야 얻는 법 정녕 놓을 수 있는 법을 배우려 비 오는 날에 내 마음 허공에 묶어 두리라

작품 발표작 2021.07.10

해무(海霧)|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해무(海霧) 松竹 김철이 세상은 여태 자는데 성급한 갈매기 떼 이른 새벽을 절로 깨우며 눈물 없을 울음을 게걸스럽게도 토해낸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련가 해녀들 휘파람 한 많은 생의 무게 바닷속 저 멀리 잠재우러 들어간다. 동정하는 뱃고동 구슬픈 소리 철썩이는 파도를 벗을 삼아 주어진 하루를 죽이려 망망대해 거슬러 흘러간다. 누굴 위한 춤사위인가 흐느적거리는 무희의 춤은 흐린 날 하루살이 생의 끈을 풀어 너른 바다 좁은 듯이 번져간다.

작품 발표작 2021.07.03

낙화(落花)|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낙화(落花) 松竹 김철이 어디서 허덕이다 온 것인가 길 잃은 영혼아 나물 먹고 물마시면 족할 것을 마음 하나 접지 못함이 마르지 않는 후회의 강물로 흐른다. 세상만사 모두 새옹지마인 것을 계절의 여왕 오월에 핀다 하여 지지 않고 배길쏘냐 돌고 도는 시절이라 벗지 못한 아쉬움 절로 남겠지만 귓전에 맴도는 그 말씀 거역할 수 없음이니 가지에 맺은 정을 내려놓고 돌아서 홀로 가는 길이 참으로 아름다운 걸음이라 나는 가려네 따사로운 계절이 찾아오기 전에…

작품 발표작 2021.06.26

문지방(門地枋)|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문지방(門地枋) 松竹 김철이 한 걸음만 내디디면 세상은 반겨줄 텐데 고사리 같은 두 주먹 불끈 쥐고 조약돌 같은 두 발로 버티며 세상 문지방 넘기를 애써 우누나 상수 들고 환영하는 이 둘도 더 되건만 지고 갈 삶의 무게가 두려워서인지 핏대를 세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니 저러다 엎어져 코 깨질까 무섭네 문지방 지어낼 적에 버티고 섰는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장승처럼 두 문설주 보듬어 안아주거늘 네 부모 네 태어날 적 무심히 지켜보지 않을 터 아이야! 울지 말아라 어차피 이 세상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더냐

작품 발표작 2021.06.19

무지(無知)|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무지(無知) 松竹 김철이 거리에 차이는 게 돌멩이라 귀한 줄 모르고 살 듯 밤마다 곁에 누워 코 고는 자 뉘라서 귀하지 않겠나 부모님 나 외로울까 닮은꼴 의지하라 낳아주신 내 혈육 제아무리 힘센 장사라 해도 정녕 끈을 수 없는 인연 하늘이 내려주신 더없이 큰 선물 내 아비 내 어미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몰랐네 세상 그 무엇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움이란 배따고 넣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껴 아는 것인데 보라 할 땐 절로 눈을 감았고 느껴라. 할 땐 가슴을 닫아버린 무지(無知)함을 이 땅 위에 날 보내신 이 크신 은덕에 돈수재배(頓首再拜) 용서를 청한다.

작품 발표작 2021.06.12

현실도피(現實逃避)|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현실도피(現實逃避) 松竹 김철이 빈주먹 쥐고 왔다 두 손 털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 옷 한 벌 걸쳐 입고 한 끼니 때웠으니 더 바랄 게 뭐 있겠나 마음심(心) 한 글자 간수 못 해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듯 순항하는 인생 뱃길 술 취한 취객 마냥 어지럽게 살지 말고 대청에 배 깔고 하늘을 바라보는 천심을 닮아 내어주는 법이나 배워감세 현실을 내어주어야 미래가 찾아오는 법이니 가꾸지 않아도 돌보지 않아도 절로 피는 들꽃을 보라 탐욕스러운 시절 탐내지 아니하며 제자리 제 본분 다 지켜 짓밟는 자 코끝에도 진한 향기로 남겠네.

작품 발표작 2021.06.05

돌지 않는 풍차|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돌지 않는 풍차 松竹 김철이 흘러가는 물이라 하여 정녕 감정이 없을쏘냐 강도 끼고 바다를 거슬러 흐르다 보면 없던 감정 절로 생기질 않겠나. 산꽃도 들꽃도 절로 핀다 하여 마냥 꺽지 마소. 무슨 팔자 기구하여 한평생 주군 없는 생을 산단 말고 하늘아! 하늘아! 산새도 들새도 잠자고 깰 둥지가 있거늘 머리 하나 누일 곳 없는 이 세상 무엇 하러 사는지 물어나 보자꾸나 바람 한 점 쟁이지 못해 돌아가는 인생살이 어지럽기 그지없네 어허~ 통제라 이다음 세상엔 육신 없을 아지랑이 생을 살려네

작품 발표작 2021.05.29

돌팔매|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돌팔매 松竹 김철이 인생 백 년 살다 보면 꽃도 피고 낙엽도 지겠지만 시절은 가고 또다시 돌아오는 것 업고 놀던 벗일랑 내려놓지 말아라 돌부리에 걸린 발 아프다고 되 걷어차지 마라 주객이 전도되는 일도 숱하게 많으리 나 이 땅에 왔으니 하루해 걷다 보면 소도 보고 말도 만날 테니 길섶에 똥 싸는 짐승이라 마냥 천대시 마소 고양이 밤눈 어두운 격이지 제 코앞도 못 보면서 남의 콧물 닦아주려 하니 밥 먹고 똥 싸는 만물의 영장 심히 가엾더라

작품 발표작 2021.05.22

시오리 솔밭길|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시오리 솔밭길 松竹 김철이 다 낡은 검정 고무신 한 켤레 신겨 보내도 좋으련만 중죄를 지은 죄인 마냥 알몸으로 보내셨으니 그 서러움 어디다 비하리 입만 열어도 거짓이요 숨만 내쉬어도 죄를 지으니 입이 있어 무슨 변명 내놓을까 시오리 솔밭길 기왕에 홀로 나왔으니 가시 같은 솔꽃이 피어 만개할 때까지 마음의 낫으로 마음의 잡초를 베고 영혼의 호미로 영혼의 꽃씨를 심어 주어진 생의 밭을 가꾸려네 입고 돌아갈 옷 한 벌 마련할 때까지…

작품 발표작 2021.05.15

마실 나온 사람들|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마실 나온 사람들 松竹 김철이 갈 길은 멀고 해는 서산에 지는데 비구름 험상궂기 그지없으니 둥지는 저만치 아롱거린다. 어느 시절에 나왔는지 고무신 뒤꿈치는 다 헐고 비실대는 걸음마저 영혼의 허기를 쟁여간다. 뉘라서 막을쏘냐 세월의 발걸음을 기왕에 나왔으니 쉬다 가면 좋을 것을 조급히도 달려간다. 이다음 다시금 볼 수 있을까 아름다운 이 세상 마실 나온 사람들 더 붉은 황혼길을 향해 걸어간다.

작품 발표작 2021.05.08

산보 가던 날|저서_인생노름 중에서

산보 가던 날 松竹 김철이 하늘 높아 좋은 날 신명 난 네 바퀴 절로 구른다. 새장에 갇힌 마음 가을 산사 들길에 풀어놓고… 풍문을 들었는지 산 까치 손님맞이 손색이 없다. 융단을 깐 듯 누렇게 바랜 솔잎 안방인 양 눕고 싶은 심사 꿀떡이더라 불어오는 실바람 대나무 숲으로 흐르는 댓잎의 쌓인 이야기 가을을 밟아 새기려는 우리 미래의 추억인양 한 꺼풀 두 꺼풀 가슴에 쌓여간다. 흐르는 계곡물로 염색이라도 했음인지 하얀 갈대 더 높아가는 하늘에 삿대질한다. 무르익는 시절 시샘을 하듯이…

작품 발표작 202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