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도포 자락 휘날리며 다가오시는 주님의 힘찬 발걸음 | 김원호 바오로 신부님(등촌3동 주임신부)

松竹/김철이 2026. 8. 9. 10:30

도포 자락 휘날리며 다가오시는 주님의 힘찬 발걸음 

 

                                                                              김원호 바오로 신부님(등촌3동 주임신부)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신학교 생활의 시작은 모든 것 이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내던 제 눈에 기숙사에 걸려 있던 그림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운보 김 기창 화백이 한국의 색과 멋으로 그린 예수의 생애 중 〈물 위를 걷다〉라는 작품이었습니다. 푸른 파도 위에 하얀 도 포 자락을 휘날리며 초연히 서 계신 예수님께서 반쯤 벗 겨진 갓을 쓴 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베드로의 두 손 을 꼭 잡고 계신 그림이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처지의 저에게 그 그림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방학 때 헌책방 골목을 샅샅이 뒤져 ‘운보 김기창 성화 집’을 힘들게 구해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스라엘의 광야가 우리 강산으로 바뀌 고, 성경의 인물들은 매일 골목에서 마주했을 것 같은 이 웃의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이국의 왕으로 멀게 만 느껴졌던 예수님이 ‘우리의 왕, 나의 주님’으로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나의 나약함과 한계를 고스란히 당신의 것 으로 안으시기 위해 우리말과 옷을 입고 삶의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거친 풍랑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시퍼런 파도 위를 걸어 주님께서 다 가가십니다. 파도 위 발자국은 사라질지언정 주님의 사랑 과 용기는 제자들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이렇게 수고로 움을 마다않고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주님은 가장 큰 위 로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에게 다가오 신 주님을 잊습니다. 삶이 잔잔할 때는 생각조차 하지 않 다가 조금만 인생의 바람이 불고 고난의 파도가 몰아치면 주님을 찾습니다. 그러다가도 눈앞의 두려움에 압도되는 순간 우리는 물속으로 가라앉는 베드로가 됩니다. “주님, 살려주십시오!” 외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의심과 불 신이라는 더 깊은 수렁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습니다.

 

우리가 빠져드는 거친 바다는 세상의 시련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불신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결코 우 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바로 그 불신의 바다 위를 걸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거센 풍랑도, 우리의 깊은 의심도 주님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허 우적거리는 우리의 손을 단단히 움켜쥐시며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애정 어린 핀잔을 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 야, 왜 의심하였느냐?” 오늘도 주님께서는 도포 자락을 날리며, 바로 여러분의 삶 한가운데로 걸어오고 계십니 다.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 의 힘찬 발걸음과 우리를 단단히 잡아주시는 주님의 두 손이 있는 한 우리를 삼키려던 어떤 거친 파도도 주님 사 랑을 체험하는 통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