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안에서의 환대 | 부모자녀 관계_ 나를 살린 5초간의 눈빛
벌써 40년이 지난 이야기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가슴 한가득 설렘을 품고 독 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저명한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세미나에서 뜨거운 토론을 나누며 학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유학 생활을 꿈꿨다. 그러나 막상 발을 디 뎌보니 현실은 달랐다. 전공 수업 전에 반드시 어학 코스를 통과해야 했는데, 유 럽권 밖에서 온 유학생이라면 빨라야 일 년, 길면 이 년을 매달려야 넘을 수 있는 관문이었다.
도착 직후 치른 수준 평가에서 나는 6단계 중 겨우 2단계에 배정되었다. 통상적 인 경로라면 기초 과정 두 학기를 밟은 뒤 시험 준비반에서 한 학기를 더 보내야, 비로소 어학시험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일 년 반을 독일어 하나에만 쏟아야 한다 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라도 빨리 심리학 강의실 문을 열고 싶었다. 오기 와 간절함을 연료 삼아 온 힘을 다해 달렸고, 한 학기 만에 시험 준비반으로 올라 섰다.
그러나 기쁨은 짧았다. 탄탄한 기초를 쌓아온 학생들 사이에서 제 속도를 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쪽지 시험 점수는 번번이 최하위를 맴돌았다. 자존감은 한 꺼풀씩 벗겨져 내렸고, 좌 절이 켜켜이 쌓였다. 매일 누구보다 일찍 학교로 향했지만, 교실 안에서는 언제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를 골랐다. 낮은 점수가 반복되면서, 선생님도 나 를 달갑지 않게 여기실 거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날도 며칠 전 제출한 에세이를 돌려받았다. 내가 쓴 글보다 빨간 펜 자국이 더 많아 보이는 답안지였다. 가슴 밑바닥에서 묵직한 절망이 차오르며, 온몸이 책상 아래로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와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무심결에 눈을 들었더니,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마치 내 가 고개를 들기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나는 그 시선에 붙잡혀 그 대로 굳어버렸다. 그 순간, 선생님은 두 눈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깊게 감 았다가 떠 주셨다.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를 가득 담은 채로. 고작 5초 남짓한 순 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눈빛 속에는 수많은 말이 고요히 담겨 있었다.
“괜찮아. 너무 실망하지 마. 나는 네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고 있어.
낮은 점수를 부끄러워하지 마. 너는 내 소중한 학생이야.”
지금도 그 눈빛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5초가 나를 살렸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고, 희망의 끈도 놓지 않았다. 그 선생님의 이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뢸러 선생님’
뢸러 선생님의 그 눈빛을 가슴에 새기고 매달린 끝에, 마침내 그 학기 안에 어학 코스를 통과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때로는 단 5초의 눈빛 하나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그 선생님 은 그렇게 내게 가르쳐 주셨다. 나는 오늘도 가족에게, 학생들에게, 내담자들에 게, 그날 뢸러 선생님이 건네주셨던 그 눈빛을 조용히 되돌려 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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