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따리

신앙 이야기 | 멈춤 속에서 만 난 하 느님의 은총

松竹/김철이 2026. 7. 25. 18:00

멈춤 속에서 만 난 하 느님의 은총

 

 

작년 9월 말, 아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사고로 오른쪽 십자인대가 끊어져 갑 작스럽게 재건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입원으로 저는 고등학교 1학년 아 들과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돌보기 위해 급하게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 앞에서 저의 일상은 멈추었고, 가정의 모든 일은 제 몫이 되었 습니다. 평소 하지 않던 요리와 설거지, 아이들 옷을 개고 정리하는 일, 학교 갈 준 비를 챙겨주고, 빨래를 마무리하는 일까지 집안일은 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과 정에서 저는 큰 피로와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전에 퇴근 후 집안이 정리되지 않았 다는 이유로 아내를 질책했던 제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막상 제가 직접 해 보니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완벽을 요구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몸 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제 삶을 돌보며 감당하셨을 노고와, 주부들이 겪는 고충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제 삶에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막내딸의 아침밥을 챙기고 손을 잡고 학교까지 함께 걸어가는 시간 속에서, 그동안 바쁜 일상에 밀려 놓치고 있었던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시간이 주어지자 저는 지난 50년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무엇이 중요한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멈춤의 시간 속에서 인간관계와 삶의 방향을 성찰하였고, 기도하는 시간 또한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삶을 잠시 멈추게 하시며 다시 바라보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이 성찰의 시간 속에서 제 삶의 새로운 목표도 생겼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대학에 진학하였지만, 군 제대 이후 여러 사정으로 끝내 졸업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 육아휴직 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휴직이 끝난 이후에도 제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 니다.

 

그 결과 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입학을 신청하였고, 앞으로 배움을 이어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또한 아내의 사고로 주어진 멈춤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그 런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내는 퇴원했지만 아직 휠체어와 보조기구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배우자 의 부재 속에서 가정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유지될 수 없으며, 서로의 역할과 사 랑이 모여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멈추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이 모든 깨달음이, 제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