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따리

신앙 이야기 | 보아라. 성당 불빛이 저기 있잖니 .

松竹/김철이 2026. 7. 18. 18:00

보아라. 성당 불빛이 저기 있잖니 .

 

 

부모님의 이혼으로 나의 어린 시절은 할머니와 함께였다. 하루 종일 묵주를 손에서 놓 지 않으시던 할머니는 자연스레 내 신앙의 스승이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하는 하루하 루는 그 자체로 매일 하나의 거대한 기도가 되었다. 집안 성모상 앞에는 언제나 촛불 이 일렁였고, 할머니의 모든 시간은 끊임없는 기도와 성당 봉사활동, 레지오 활동으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었다. 저녁 기도를 바치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가톨릭 성가 책을 들고 성가를 부르는 것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풍경이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어느 날,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실로 향했 다. 울며 달려온 나를 할머니는 병실 침대에 앉아서 평온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손 에는 여전히 묵주가 들려 있었다. 염려와 슬픔에 잠긴 나를 향해 할머니는 손을 들어 침대 옆 창문을 가리키셨다.

 

“괜찮다. 여기 앉아 있으면 창밖으로 성당 불빛이 얼마나 환하게 보이는지 모른단다. 하루 종일 성당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죽 좋아. 보아라. 성당 불빛이 바로 저기 있잖니.” 내 눈에는 그저 번잡한 밤 도시, 가로등 불빛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잔상만이 껌뻑이는 풍경일 뿐이었는데도 할머니는 정말로 기쁜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그 짧은 위로를 마지막 선물로 남기고, 이틀 뒤 하느님의 품으로 떠나셨다. 장례를 마치고 문득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라 지도 앱을 켰다. 병원 근처에 정말 성당 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예상대로 할머니가 가리키셨던 방향에 성당은 없었다. 할 머니의 눈에는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음과 번잡한 빛조차 그저 하느님의 자비가 머무 는 따스하고 평화로운 성당의 불빛으로 보였던 것이다. 본인의 육신이 아닌 신앙의 눈 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보고 계셨기에.

 

할머니의 1주기가 지나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계셨 다. 운전석에는 예수님이 계셨다. 할머니는 미사에 늦겠다며 운전을 하고 계신 예수님 을 재촉하고 계셨다. “할머니, 예수님한테 그러시면 어떡해요!” 나는 그 우스우면서도 평화로운 광경에 한참을 웃다가 깨어났다. 미사에 늦거나 빠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시던 우리 할머니.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아가다 여사님은 여전했던 것이다.

 

 

살면서 문득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막 막해질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 어떤 순간, 세상 어느 곳 에서라도 우리를 비추고 계시는 빛,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빛을 가리키는 목소리를.

 

“보아라. 성당 불빛이 저기 있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