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안에서의 환대 | 부모자녀 갈등_02 아빠와의 대화
그의 고민은 ‘주관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매사를 남에게 물어보며 결정했고, 여 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다 보면 서로 엇갈린 의견들 사이에서 또다시 길을 잃 곤 했다.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묻고, 그 사람의 말을 따랐다. 진로를 선택 해야 할 때는 특히 막막했다. 누군가 그에게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면, 그는 정작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 더욱 혼란스러워 했다.
어디에서 이런 특징이 비롯되었는지, 우리는 함께 더듬어 갔다. 그는 늘 말을 잘 듣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착한 아이였다. 반면 누나는 고집스럽고 다루기 힘들 다는 말을 들었고, 어머니와 자주 부딪혔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어머니께 걱정 을 끼쳐 드리지 않으려 더욱 애썼다. 덕분에 칭찬과 인정이 쏟아졌고, 그것은 그 에게 더없이 소중한 성장의 양분이 되었다. 그런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그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었다. 쌓아온 성취와 능력이 있음에 도, 그것이 온전히 자기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낯섦이 늘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 다.
상담 내내 어머니와 누나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아버지에 관한 말은 좀처럼 나 오지 않았다. 물어보니,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고 했다. 그는, 홀로 자식을 키우느라 지쳐가는 어머니의 슬픈 뒷모습을 바라보 며, 자신이 기쁨이 되어 드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 없는 가족이라 는 사실은 늘 감추어졌고, 그 죽음은 가족 안에서 금기처럼 자리 잡았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더해지자, 그가 ‘착한 아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더 선명 하게 이해되었다. 어머니는 강요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가족 안에서 자신보다 어 머니를 먼저 돌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 알아차 리는 힘은 자라지 못했다. 이제 와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 만, 수영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사람에게 그냥 물에 뛰어들라는 것처럼 막연하 기만 하다.
그래서 그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남의 이야 기를 잘 듣는다는 것. 그렇다면 그 ‘듣는 힘’을 안으로 향하게 하면 어떨까. 그래 서 우리는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던 아버지를 마음의 가족 안으로 초대했다. 아 버지는 가족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 갑작스러운 죽음이 남긴 충격과 슬픔은, 어머니의 우울도, 누나의 반항도 모두 해결되지 못한 애도의 상처였다. 그러나 떠난 사람이라 해도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여전 히 그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자유롭게 꺼내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다 정하고 든든했으며, 무엇이든 잘한다고 믿어주셨다. “왕자님”이라 부르며 아낌 없이 사랑을 주셨던 분. 지금도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만나면 “잘하고 있다”라 는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바로 여기에서 해답이 보였다. 그는 이제 무언가 결정이 필요할 때, 마음속 아버 지께 여쭤보기로 했다. 자신을 온전히 믿고 지지해 주시는 그 아버지는, 결국 그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다. 묻기의 달인이었던 그는, 이제 자신의 방식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내면의 힘을 키워가고 있다. 아빠와의 대화가 바로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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