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꼴
신정훈 미카엘 신부님(해외선교)
‘함께 먹다’, ‘함께 놀다’, ‘함께 살다’는 띄어 쓰지만 ‘함께 하다’는 붙여 씁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은 사람들 사이 혹 은 사람이 함께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를 보면 함께하 는 것은 인간의 기본 모습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과 함 께하는가가 문제입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꼴 보기 싫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지옥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함께하기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는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얻으 려 산에 올라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슬렀습니다. 하느님은 이에 백 성을 버리고자 하십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서 나게 될 새 로운 민족과 동행할 의향이 있으시지만, 이 백성과는 더 이 상 같이 가고자 하지 않으십니다. 이때 모세가 말합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길 바랍니다.”(탈출 34,9) 모세는 자신을 못살게 구는 백성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저희”라는 말로 함께 묶습니 다. 모세는 자신을 접고 다른 이들의 편에 서는 중재자의 전 형이자 장차 오실 예수님의 예형입니다.
바오로는 코린토 공동체에 보낸 첫 편지에서 “형제 여 러분”이라는 말을 16번이나 쓰지만 둘째 편지에서는 두 번만 씁니다. 맘이 편치 않습니다. 바오로는 이미 그들에 게 눈물로 쓴 편지를 보냈고, 그들이 그릇될까 노심초사 하며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그들을 비난 합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인 편지 말미에 화해를 청하며 서로 뜻을 같이하여 평화롭게 살자고 제안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 과 성령의 친교”(2코린 13,13)라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지극히 아름다운 표현이 나옵니다. 바오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과 사랑과 친교만이 자신과 코 린토 공동체 사이를, 또 분열된 공동체 자체를 화해시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곳, 화해와 공존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모세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부와 인류 사이의 중재자가 되 십니다. 세찬 바람이신 성령께서는 우리 사이의 불목과 분 열을 몰아내십니다. 예수님처럼 타인 편에 섭시다! 편 가르 는 옹졸함에 사로잡힘 없이 하늘에서 오는 기운에 마음을 활짝 엽시다! 한 마음으로 서로를 성화시키면서 하나가 되 는 부부 안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사 목헌장〉 52항 참조) 다투지만 화해하는 부부에게서 하느님이 보 이고 골치 아픈 세상 안에도 하느님의 외아들이 계십니다. 이 사실을 신뢰하며 그분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가 가장 인 간답게 되는 길이자 그분의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사제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삼위일체의 사랑을 살아가야 할 우리 | 강재원 미카엘 신부님(임당동 성 골롬바노 본당) (0) | 2026.06.01 |
|---|---|
| “오늘도 너의 작은 마음에 내가 닿기를” | 김건우 하상바오로 신부님(장덕동 본당) (0) | 2026.05.31 |
| 호국보훈의 달 | 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님(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0) | 2026.05.29 |
| 역설의 신비 안에서 배우는 사랑의 관계 | 최진우 아드리아노 신부님(청소년국장) (0) | 2026.05.28 |
| 사제 단상 | 평행 이론-두 의사 (0) | 2026.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