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보편교회의 언어, 환대
2007년 여름, 스물다섯 살 청년. 나는 자유롭지 못한 신학생이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 8,32) 내가 자유롭지 못함을 느낀 것은 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 중 제주에서 첫 번째 청년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학생 이전에 한 명의 청년 으로서 ‘가톨릭’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청년들과 함께 신앙 체험을 하고 싶었다. 홈스테이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들 간의 환대와 스며듦’이었다면, 개막 미사와 폐막 미사는 ‘처음 만난 이들이 가톨릭 신앙을 한목소리로 고백하는 것’이었다. 대회가 끝나고 제주교구는 ‘수기 공모 전’을 진행하였고, 신학교에서 보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담백하게 풀어냈다. 대학원 1학년을 마치고 겨울방학이 되자, 주교회의에서 연락을 받았다. ‘수기 공모전 대상’ 시 상식에 참여해 달라는 전화였다. 어리둥절하게 광진구에 위치한 주교회의를 찾아갔다. 상금 은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그렇게 나는 WYD를 처음 경험했다. 영어를 못했으므로 홈스테이가 걱정되었지만, ‘걱정’은 ‘설렘’을 이기지 못했다. 인천교구 사제가 파견된 호주 브로큰베이 교구에서 홈스테이와 교구 대회를 경험했다. 홈스테이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간단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 외부 일정에 참여한 후, 집에 돌아와 저녁 시간을 보냈다. 본격적으로 어설프지만 영어와 인터넷을 사용하 여(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싸이월드 홈피를 보여주며 소통했다. 신학생임을 알렸고, 사제가 되 어 꼭 돌아와 감사 인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헤어지기 전의 마지막 날 밤은 이별의 시 간. 서로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고, 더 표현하고 싶어 했다. 명찰에 홈스테이 부모님 핸드폰 번호를 적어두었다. 홈스테이 부모님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자, 내 가슴 한편에도 뭉클함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시간이 흘러 나는 2010년에 사제가 되었고, 1년 후 ‘호주 브로큰베이 교구 선교’ 로 지명됐 다. 그때까지만 해도 WYD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호주 첫 본당에서 짐을 풀던 중 WYD SYDNEY 2008 명찰을 발견했다. 명찰에는 홈스테이 부모님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MAX and JENNY”. 내 심장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었다. ‘이분들을 만나라고 보내주셨 구나!’ 신학생으로서 홈스테이했던 가정을 사제가 되어 방문했다.
“ We are very proud of you! (우린 네가 무척 자랑스럽구나!) ”
3년 전 홈스테이의 기회가 선물해 준, ‘믿음으로 맺어진 또 하나의 가족’이 나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이후 10년간 선교 사제로서 활동하던 때, 홈스테이 부모 중 MAX의 장례 미 사를 집전했고, JENNY와 그 가족을 위로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단순히 해외 청년들을 해당 기간에 ‘환대’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보편교회의 뜻을 절반만 헤아린 것이 될 것이다. 이미 한국에 있는 외국인, 앞으로도 남아 있 을 나그네들을 ‘환대’하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진리’가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자 유’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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