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길을 헤매는 이유 | 손성문 신부님(안동시종합사회복지관)

松竹/김철이 2026. 5. 1. 10:00


길을 헤매는 이유

 

                                                       손성문 신부님(안동시종합사회복지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

 

제 숙소는 영주에 있어서 주말이면 가까이 있는 소백산에 자주 오릅니다. 예전에는 겨울에 눈 구경을 하러 가끔 산에 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목표가 생겼습니다. 등산 애호가들이 눈 덮인 한라산에 오 르는 영상을 보고 무척 부러워서 저도 언젠가 겨울에 한라산 정상에 올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백록담에 가는 길 중 덜 힘든 코스로 가 더라도 오르는 데만 4시간 반이 걸린다고 합니다. 평시도 아니고 눈 쌓인 산길을 그리 오래 걸으려면 체력부터 길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보다 덜 높은 소백산에 자주 올라서 근력을 키우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산에 갈 때 멀리서 보면 정상이 잘 보이지만 막상 등산로 입구에 서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길을 잃지 말라고 중간중간 이정표가 있습니다. 등 산객들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산행 리본도 등 산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 이정표를 만나면 남은 거리와 지나온 거리를 보면서 뿌듯함도 느끼고 지친 마음을 다잡기도 합 니다. 때로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하고요.

 

신앙의 여정도 그와 비슷한 듯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목적을 가진 여정이지요. 그 목적은 바로 부 활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푼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매거나 때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목적지가 높아서가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분의 뜻이 나의 뜻과 맞지 않아서, 주님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느님보단 거짓 우상들에 더 의지합니다. 하느님 구원의 손길을 수없이 체험했 음에도 어떤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우상들만 자꾸 찾습니다. 왜일까요? 요즘 말로 고구마가 아닌 사 이다만 찾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내 생각, 내 욕망과 어긋나지만, 우상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개신교에서 흔히 강 조하는 기복신앙, 3박자 축복론과 가깝습니다. 사 이다만 자꾸 먹으면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는데, 우리가 물을 때마다 바로바로 답을 알려주는 혹은 원하는 답만 해주는 친절한 신을 기대할수록 하느님께 가는 길은 점점 흐려지고 멀어질지도 모 릅니다.

 

오늘 주님은 당신 자신이 우리의 목적지인 “진 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이라고도 하십니다. 서양말에서 ‘길(way)’은 방 법, 방향이란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목적지로 가 는 길인 동시에 수단이자 나침반으로 이해할 수 있 습니다. 즉, 주님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주님이 보여주신 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분은 고통받는 이들 앞에서 함께 슬퍼하셨고 불의를 보면 화를 내셨습니다. 가장 작 은 이를 먼저 살피셨고,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으 스대지 않았습니다. 이 단순한 게 잘 안돼서 가정에서 본당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이정표와 쉼터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선 배들이, 우리 교회가 어떤 길로 갔고 어떻게 어려 움들을 헤쳐왔는지 살펴보면 좋은 길잡이와 휴식 처가 되어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한 이상, 또 이미 그 길에 들어섰고 나를 보며 따라오는 후배들이 있음을 생각하며 오늘도 목적지를 향해 또 한걸음 내딛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