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시는 목자
정민하 율리오 신부님(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 둑이며 강도다.”(요한 10,1) 이 말씀은 우리를 아시고 부르시 는 참된 목자의 사랑을 묵상하게 합니다. 문으로 들어오 는 목자는 자신을 숨기지 않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의 이름을 부르며 조용히 이끌어 주십니다.
교정 사목을 하며 교도소 안에서 한 청소년을 만난 적 이 있습니다. 여러 상처로 마음을 굳게 닫은 채, 매주 조 심스럽게 이름을 불러도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 지 않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미사 후에 그 아이 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신부님, 늘 제 이름을 불러 주셔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저도 신부 님이 믿는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린 경험을 통해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조심스러운 걸음으 로 나아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말이나 설득이 아니라, 이름을 기억해 주 고 기다려 주는 마음임을 교정 현장에서 자주 깨닫습니다.
성소 주일을 맞아 ‘부르심’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성 소는 특별한 몇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길이 아니라, 각자 의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 식입니다. 가정에서 사랑을 지켜 가는 부모님들, 각자의 일터에서 정직함을 선택하는 이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조용히 지탱해 주는 손길 하나하나가 모 두 소중한 성소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 있 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미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의 문 이다.”(10,7) 문은 막힌 벽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나아가도 록 열어 주는 자리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단절이 아 니라 연결을, 절망이 아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습니다.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고, 흩어졌던 관계가 이어지는 은 총이 예수님이라는 그 문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은 많은 것을 소유하 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라는 확신 안에 서 관계가 회복되고 마음이 깊어지는 삶입니다. 그 확신 은 우리를 다시 사랑하게 하고, 넘어지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래서 어쩌면 성소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 고 그 부르심에 한 걸음 내딛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기꺼이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내려주시길 청합니다. 특히 주님 의 부르심을 식별하고 있는 이들과 눈에 띄지 않는 자리 에서 조용히 헌신의 길을 걷고 계신분들이 주님께서 부르 시는 그 이름 안에서 평화와 용기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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