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물고기
명동성당 갤러리1898에서 한 작가가 전시회를 가졌 다. 성경 말씀을 배경으로 제작된 작품들은 언뜻 보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비단 조각 을 한 땀 한 땀 정교하게 바느질한 공예 작품이다. 작품 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작업 과정에 서 쏟아부은 열정과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 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에서 다시 전 시회가 열렸다. 작품의 빼어남은 여전했으나 이번에 는 간절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사이 작가는 ‘소뇌 위축증’이라는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은 근 본적 치료 대책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절망적이었을 까. 오프닝 행사에 초대받아 갔다가 작가의 인사말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손놀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작품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인 생각 마저 들었지만,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건 하느님께 자 신을 의탁했기 때문이란다. 사라져 가는 기력을 되살 리고자 작가는 매일 복음을 발성 연습하듯 소리 내어 읽었고, 기도 중에 하느님의 기적을 바랐는데 소망하 던 기적이 마침내 일어났단다. “작품 활동을 더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전시회를 열 수 있게 해 주시니 바로 주님의 기적이 아닙니까!”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이 뜨 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작품 한 점이 나에게 왔다. 루카 복음 5장 4~6절에 나오는 갈릴래아 호수에서의 고기잡이 기적에 관한 작품이다. 밤새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시몬 베드 로에게 예수님께서 인자한 손길로 격려하시며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고 하 셨고, 베드로가 그렇게 따르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 은 양의 물고기가 잡힌 형상이었다.
작품 속의 물고기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배 고픔의 해소, 풍요로운 기쁨, 어부의 노고, 번식과 다 산... 생각해 보니 물고기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넘치는 사랑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가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라’ 뇌가 위축되어 운동 기능이 통째로 상실되어 가면서도 원망 대신에 어 떻게 저런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밤이 깊어 갈수록 별이 잘 보이듯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삶일수록 역설적으로 은총의 빛을 더 잘 바라볼 수 있는가 보다.
나 역시 예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려는 순간마다 이 작품을 바라보며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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