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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꽉 막힌 마음 여는 법: 작은 틈새 찾기 | 공현대축일 후 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 01 06

松竹/김철이 2025. 1. 6. 07:00

[ 꽉 막힌 마음 여는 법: 작은 틈새 찾기] 공현대축일 후 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 01 06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uEV33ziWKRM

 

 

 

2025년 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 꽉 막힌 마음 여는 법: 작은 틈새 찾기

어떤 분이 요즘 믿음에 불타 그 깨달음을 타인에게 전하려 하는데 거기에서 반작용이 너무 커서 조금은 힘이 빠지는 상황입니다. 그분에게 저는 ‘너만 잘났냐?’라는 반발의 마음이 들지 않게 살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자세하게 이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가끔 고해성사를 주다 보면 부모에게 떠밀리다시피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한 청년이 들어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고해본 지 얼마 되었는지, 죄는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꽤 오래 냉담하던 입이 반쯤 나와 있던 그 청년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진짜 죄 없어요.”
여기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십계명을 읊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사람은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있습니다. 용서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예수님은 빛 자체이십니다. 빛이 의미 있는 곳은 어둠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둠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죄가 없다고 굳게 믿게 하는 무언가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 임언기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주려고 간암 말기 환자를 찾아갔을 때도 그는 고해성사를 거부하며 “나 죄 없어!”라고 외쳤습니다. 임 신부님은 속으로 “그래, 너 잘났다!”라고 하며 돌아섰습니다. 꽉 막혀 말해봐야 소용이 없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리옷 유다처럼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자신이 어둠임을 알지 못하여 스스로 빛을 거부해 목을 매 자살하게 된 상황이 아니라면 항상 희망이 있습니다. 완전히 빛을 차단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항상 빈틈을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사탄만이 빈틈을 주지 않습니다. 
저도 나름 잘 산다고 교만해질 때가 많습니다. 이때 저의 빈틈을 공략하는 말들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자비가 필요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고해성사를 조금 늦게 들어가는 것, 강론 때 조금 합당하지 않은 농담을 하는 것, 아주 가끔이지만,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새벽 미사를 했던 것, 감기 걸리고 마스크 안 쓰고 미사 하는 것 등입니다. 만약 신자들이 “신부님은 회개하셔야 해요!”라고 말하면 저도 “본인이나 잘하세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어린 관심으로 그러한 것들을 말해줄 때는 ‘아, 바꿔야겠구나!’라고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가가야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비극은 잘못된 ‘믿음’ 때문에 시작되고 그 믿음을 파괴할 작은 틈을 찾아 누구도 빛을 넣어주지 못한 데서 비극으로 끝납니다. 예를 들어 ‘멕베스’를 생각해봅시다. 
맥베스의 비극은 세 마녀의 예언을 맥베스가 맹목적으로 믿고, 주변의 누구도 그 믿음을 깨뜨리지 못하면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전개됩니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글래미스의 영주, 코더의 영주, 그리고 미래의 스코틀랜드 왕이라는 칭호로 인사를 건넵니다. 이들의 애매모호한 말은 맥베스의 마음에 야망의 씨앗을 심어줍니다. 마녀들의 말은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맥베스는 이 예언을 불가피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그가 코더의 영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이 신빙성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를 들은 레이디 맥베스는 그의 야망에 불을 지피며, 맥베스가 직접 행동해 던컨 왕을 살해함으로써 예언을 이루라고 부추깁니다. 만약 레이디 맥베스가 던컨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점이나, 던컨이 친척이자 집에 초대받은 손님임을 상기시켰더라면, 맥베스의 결심은 약화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의 조언은 맥베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운명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맥베스는 예언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행동합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그는 마녀들의 반쿠오 후손에 대한 예언 때문에 불안에 시달립니다. 그는 반쿠오와 그의 아들 플리언스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암살하려 하지만, 반쿠오는 살해되었지만 플리언스는 도망칩니다. 누군가 마녀들의 말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나 예언이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더라면, 맥베스는 자신의 행동을 재고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언의 확실성을 믿는 그의 집착은 그를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맥베스의 불안감이 더욱 깊어지자, 그는 마녀들을 다시 찾아갑니다. 마녀들은 새로운 애매한 확신을 제공합니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그를 해칠 수 없다.”라는 말과 “"버넘 숲이 던시넌 언덕으로 움직일 때까지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러한 말은 맥베스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며, 그를 파멸로 이끄는 자만심을 심어줍니다. 누군가 숲이 인간의 위장으로 인해 움직일 수도 있다는 점이나, 제왕절개로 태어난 사람이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로 간주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리적 가능성을 지적했더라면, 그의 자만심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맥베스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맥더프 가족을 몰살시키는 등 더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한편 레이디 맥베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미쳐가며,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했지만, 그들의 행위가 가져온 결과를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콤과 맥더프가 이끄는 군대가 버넘 숲에서 나뭇가지를 잘라 위장하며 던시넌 성으로 진격하자,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는 마녀들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고, 맥베스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믿음을 굳게 유지합니다. 맥더프가 자신이 제왕절개로 태어났음을 밝히자, 맥베스는 마침내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습니다. 마녀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은 그의 행동과 의미를 성찰하지 못한 태도는 결국 맥베스가 맥더프에게 죽임을 당하게 만듭니다.
맥베스의 비극은 마녀들의 예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도덕적 논리를 제시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결과입니다. 그러나 제어되지 않은 야망과 운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맥베스를 파멸로 몰아넣었고, 그의 길에는 파괴와 비극만이 남았습니다.

꽉 막힌 사람을 설득하려면 그가 믿는 믿음의 빈틈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해봐야 이미 세 마녀를 믿고 있는데 어떻게 그 생각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방법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녀는 하느님은커녕 사람에 대한 신뢰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인들도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청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녀의 믿음을 조금씩 허뭅니다. 그리고 여섯 명의 남편과 살아도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참 생명의 물을 주는 분이 당신임을 알리십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그녀는 귀를 더 막아버렸을 것입니다. 항상 꽉 막힌 사람은 그 사람의 믿음을 깰 아주 작은 것부터 찾아서 그 안으로 빛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어둠의 믿음을 깰 작은 빈틈으로 들어오는 믿음의 빛으로 자신이 어둠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차차 빛을 받아들이게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