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청소년 특집 | 내가 나일 수 있는 곳

松竹/김철이 2024. 11. 7. 09:45

내가 나일 수 있는 곳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건 너만 알고 있어.”라며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던 공간의 그윽한 공기도 생각 납니다. 학교 음악실이나 농구장 벤치, 학원 강의실 맨 뒷자리를 우리만의 아지트라 찜해두었습니다. 호 기심 많고 예민한 십 대에게는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으니까요.

 

김혜진 작가의 청소년 소설 《프루스트 클럽》의 주 인공 윤오와 나원이, 효은이는 각자 나름의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인 윤오는 이전 학교에서 생긴 어떤 사건 이후 새 학교에 전학을 왔지만 역시 이곳에서도 쉽게 아이들 속으로 물들지 못합니다. 나 원이는 영혼이 자유로운 학교 밖 청소년입니다. 한없 이 명랑해 보이지만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는 무언가 가 있어 보입니다. 윤오와 같은 반인 효은이는 공부 도 잘하고 인기도 많아 언뜻 보면 완벽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효은이의 가정에는 어두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어느 날 윤오가 도서관 옆 좁은 골목 한구석에 있 는 낡은 카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찾아내면 서 세 사람과 카페의 인연은 시작됩니다. “나, 오데뜨 라고도 불리거든.”(29쪽) 만나자마자 반말을 하는데도 기분 나쁘지 않은 유쾌한 사장님은 세 사람을 기쁘게 환영합니다. 그리고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 들을 위해 잘 쓰지 않는 공간인 카페 창고를 열어줍 니다. 그곳에서 윤오와 나원이, 효은이는 마르셀 푸 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함께 읽으며 걸어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서서히 열게 됩니다. 언제 든 찾아올 수 있고, 간섭받지 않을 수 있는 이 안전한 공간에서 이들은 지금까지 자기 안에 꽁꽁 숨겨왔던 깊은 상처를 용기 내어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윤오가 오래 묵은 상처를 드러낸 그날, 오데뜨는 뜨겁고 고 소한 쌀죽을 끓여 내어 줍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 로해 주는 따뜻한 죽 한 그릇과 내 아픔을 그대로 들 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소중한 공간. 그곳에서 윤오의 상처가 아물어 “아름 다운 흉터”(174쪽)가 되어 갑니다.

 

청소년이 오롯이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시공간은 청 소년의 성장에 무척 중요합니다. 나의 꿈을 이야기할 때 비웃음이 아닌 응원을 받을 수 있고, 나의 아픔을 그대로 들어주며 상처를 보듬어주려는 사람들이 있 는 곳에서 청소년은 존중과 신뢰, 희망을 배우고 자 존감을 키워갑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전국에 청소년 전용 공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에 서 운영하는 청소년문화공간 JU(주)와 가톨릭청소년 이동쉼터 서울A지T(아지트) 등도 청소년의 현재와 미 래를 지원하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청소년이 충분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서 더 많은 ‘오데뜨’ 가 더 많은 ‘윤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넬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