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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009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10. 9. 09:50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009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J0lrdBMVHjY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믿음의 사람들 사이에는 오랜 관심사가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좋은 기도이고 효과 좋은 기도인가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 사이에 자주 큰 주제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유행병처럼 도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개인이 하느님께 연결되는 ‘자유기도’가 열병처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관심은 예수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부러움에 가득차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에 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리고 이 때 우리의 기도에는 하나의 유일한 모범이 등장합니다. 기도 중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는 ‘주님의 기도’가 그것입니다. 

“아버지”

주님의 기도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시처럼 묵상을 하기도 하고 그 구절 구절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중심을 잡는 단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라는 기도의 시작에 등장하는 호칭입니다. 기도는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임을 드러내는 이 기도는 내용 이전에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말하는 그 실제 내용은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모도 설명됩니다. 아버지, 나를 세상에 내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때 맘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자녀의 모든 사정을 헤아리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녀는 늘 부모의 마음 안에 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고 싶어하는 기도의 내용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 속 사연을 들려드리고 싶어하고 필요한 것을 청하려 하는 우리의 말 대신 예수님은 이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분의 나라가 오게 바래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는 개인적인 소망의 자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곧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한결같이 하느님의 뜻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살기를 소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나 삶은 우리를 모르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가 아니라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그 세상 안에 함께 살 수 있도록 나약하고 흔들리는 나를 지켜달라고 청하는 것임을 주님은 알려주셨습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자녀의 이야기니까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18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