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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006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10. 6. 08:03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006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ATDkipSzkiY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7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

사람의 행동에는 거의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했다는 말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행동에도 어딘가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과관계나 연관이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인 이유에서도 이유는 있기 마련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대게 그것은 당사자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이 질문에는 몇 가지 정보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혼인을 전제로 합니다. 또한 버린다는 표현은 ‘소유’의 관계를 나타내줍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혼인은 지금에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사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도 이 혼인이 나타내는 의미 중 ‘함께’라는 의미 안에는 누가 누구에게 ‘소유’되는 식의 사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내가 남편의 소유가 되는 것과 자식이 부모의 소유로 여겨지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거기에 대해 ‘가졌으니 버려도 그만’이라는 사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 질문한 바리사이는 자신들과 많은 부분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시는 주님의 덜미를 잡기 위해 주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굳건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는 반문에 모세가 정한 율법의 한 줄을 기억합니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이 허락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법이 그들의 완고함에서 생겨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근본을 모세 이전의 기록에서 찾아 알려주십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일들 중에는 사소하게 개인적인 것만 있지 않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 편리가 습관이 되고 공동의 생각들이 모여 관습이냐 규칙으로 발전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혼의 이야기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사는가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을 말하기 전 사람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그래서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혼인을 하는 것은 분명 둘인데, 완전히 하나가 되는 ’신비‘의 영역을 경험하게 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육적인데 완전히 영적이고, 자녀를 낳고 또 그 삶이 이어지는 것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분을 닮은 것을 이처럼 드러내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고 우리가 이해 가능한 것들만 받아들이려는 오랜 습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편의에 따라 모든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자신의 밖으로 분리하는 것도 쉽게 여기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근본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존재하고 서로 사랑함을 본능으로 가진 존재이며 그렇게 하느님을 닮은 사랑의 존재여서 하느님 모상의 증명을 혼인으로 드러내며 ’누가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둘이 하나인‘ 그리고 자녀를 낳아 그 하나가 확장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도, 자녀도, 그리고 못갖춘 존재인 어린이도 우리의 삶에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들입니다. 그 소중함 속에 언젠가는 ’남편‘으로 불리는 자신도 있었음을 알아듣기를 바랍니다. 



0:00 오늘의 복음
2:18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