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71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h46b6uQQUMI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성당 안에서 사는 것은 ‘많이 심심한’ 일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일 없음을 견디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무리 시끄럽다 해도 성당 안은 참 ‘평화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세상은 참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편하고 좋기만 한 이 삶이 영 찜찜하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는 그런 주님의 사랑 속에 살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당신은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눈치 빠른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떠올릴테지만 그보다 주님의 존재는 좀 더 복잡한 위치에 계셨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구원을 이야기하던 이스라엘이지만 주님을 마주한 그들의 실제 내용은 그리 평화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실은 차별이 존재했고 극복하기 보단 적응되어 있는 차가운 평화의 땅이었으니 말입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살아계신 하느님은 불안한 요소가 되셨습니다. 실제 사랑이란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는 ‘골치아픈 존재’였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속내를 들키게 하여 친하던 이들이 갈라지고 마른 가뭄의 땅바닥처럼 세상은 온통 갈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주님의 칼이 주어진 것은 세상의 진실이 드러나고 우리가 다시 그 땅을 참 평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를 줍니다.
그러나 지금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세상은 여전히 수많은 틈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게 운명, 혹은 숙명이라 말하기도 하고 행운이든 행복이든 찾아 헤매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쇄뇌시키는 것으로 거짓 평화를 도모합니다. 내가 편하고 행복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이 오셨어도 여전히 그들이 이룬 평화를 배우고 지키는 중으로 보입니다. 그저 사소한 다툼이 있을 뿐, 그렇게 차가운 평화의 세상 속에서 교회만 지키고 또 우리만 평화로운 듯 삽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만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알고 산다면 분명히 우리 손에 쥐어진 이 평화와 사랑의 지식이 여전히 분열을 일으키는 칼이 될 것임을 알려줍니다. 여전한 세상을 모르는 이들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보다 ‘용기’를 주는 물 한잔이어야 할텐데 목마름이 더 크게 느껴지는 중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2:04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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