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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625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6. 25. 08:01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62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cSETgnD7ROY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오늘의 말씀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6.25로 기억되는 숫자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로 각인된 날입니다. 한 나라가 둘로 나뉘게 된 슬픈 사건의 시작이 아로새겨진 이 날 우리는 ‘화해와 일치’라는 주제로 함께 미사를 봉헌합니다. 많은 문화가 섞여 있고, 또 민족도 이제 다수의 민족들이 함께 살아간다고 말하는 우리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사실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어떤 여건에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베드로가 주님께 묻습니다. 자신의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지었다 합니다. 죄를 지었다는 것으로 이어지는 단어는 ‘용서’입니다. 용서를 해야 하는데 몇 번인가의 문제는 그 죄로 인해 어떤 입장이 생겼음을 말합니다. 한쪽은 용서를 청해야 하고, 또 한쪽은 용서를 해야 합니다. 누구는 잘못했고 누구는 그 잘못을 용서해야 하는데 도대체 얼마가 가능한지 한계에 관한 궁금증과 질문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사랑의 실제 느낌은 용서였습니다. 사랑이라는 넓은 가르침 중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용서였고, 주님은 그 용서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며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로 이야기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보내시며 당신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제자들은 가서 용서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용서는 자신의 아량이나 너그러움에서 나오는 용서가 아니라 하느님께는 어떤 한계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곧 우리도 살면서 미움과 다툼이 있다하더라도 이 용서는 그 근본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결국 우리의 용서는 모든 것을 이루는 이 두 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줍니다. 곧 그 마음은 주님이 함께 계신 이들, 곧 주님을 닮은 이들을 뜻합니다.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이들의 기도는 주님이 이루시려하셨던 것을 향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한 이를 대할 때 결코 미움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 사람, 심지어 그것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세우려하지 않는 이들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와 같을 겁니다. 


0:00 오늘의 복음
1:20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