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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603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6. 3. 08:01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60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ubiWrehxgBE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구세주가 세상에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또 구세주를 말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심판에 대비하자며 이상한 일들을 벌이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 구세주를 한 번 “이미” 보았고, “아직”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 대해 구세주가 한 말을 기억하고 사는 중입니다. 호들갑을 떨 이유는 전혀 없지만 머리 좋은 이들은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하지 말아야 할 것만 모아서 애를 쓰는 모습을 봅니다.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배우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람에게 맡기셨음을 압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아닌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배웁니다. 우리가 타고난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사랑’의 능력입니다. 욕심은 그저 ‘없는 것’이거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물론 자기에 관한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에게 하느님은 당신을 닮은 사랑의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즐거워하셨습니다. 처음 사람이 자신에게 눈을 뜨고 애를 쓰게 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내 자신의 것을 묻는 악마의 이야기에 스스로 무너지고 맙니다. 착각과 혼동, 그리고 유혹에 대한 선택으로 사람은 ‘죄’를 짓게 되고 낙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세상의 소작인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느새 주인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맞서서는 단합하고 틈만 보이면 서로 싸우며 서로의 것을 더 가지려 애를 씁니다. 원래 주인의 것이었고 모든 것은 주인에게서 나왔음을 잊었습니다. 자신들이 이 땅에 있는 것도 주인 때문인데 말입니다. 주인이 원한 것은 그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며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소출의 ‘얼마’입니다. 물론 이 말에 또 사람들은 ‘십일조’를 말하며 들썩이겠지만 중심은 양이 아니라 근본입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때로 하느님께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찌그리 착하기만 할 수 있으실까요? 당신에 대해 사람들은 지옥과 벌을 말하며 심판이라는 단어를 입에 감기게 사용할 때 주님의 선택은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라며 가장 소중한 아들을 보내시고, 또 그 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심판이 아닌 구원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 하느님을 두고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삽니까?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답을 좀 합시다.



0:00  오늘의 복음
2:33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