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성소 聖召 | 길

松竹/김철이 2024. 5. 17. 10:30

 

 

제가 신학생일 때, 어떤 선 배가 “너는 왜 사제가 되고 싶 니?”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사건들이 떠오르다 보 니 조금은 머뭇거리면서 “어릴 때 성경을 읽었을 때 예수님이 멋져 보였어요.”라고 대답했었 습니다. 제가 성소라고 느끼는 다양한 사건도 많지만, 그 중심에 있는 사건은 아버 지의 부재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께서는 교 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집 안은 사람들의 우는 소리로 가득했고 평소보다 바라보는 시선이 더 많아 졌을 뿐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들이 다 이상했고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관을 땅에 묻고 어머니께서 한참 서 계셨습니다. 저는 그저 다 리가 아프다고, 산에 있기 싫다고 빨리 내려가자고 투덜댈 뿐이었지요.

 

어머니께서는 매주 저와 동생들의 손을 잡고 아 버지 산소로 향했습니다. 어머니는 산소에 도착하면 저희에게 묘비명을 읽어주시며 아버지를 위해 기도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위해 기도할 때면, ‘왜’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었습니다. ‘왜’라 고 저에게 질문하면서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지요. 죽음이 인간의 끝 이고,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 땅에 묻힌 것이라면, 남 아있는 이들은 과거의 기억으로 과거에 머물러있는 게 아닌가? 죽음을 앞둔 ‘나’라는 사람에게 과거, 지 금의 현재, 아직 다가오지 않 는 미래가 무슨 의미가 있을 까? 이러한 의문들이 저를 집 어삼켰습니다.

 

머릿속은 점차 부정적인 생 각들로 가득 찼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고 생각했습 니다.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던 저에게 김수환 추 기경님께서 돌아가신 기사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 습니다. 그분의 생전 말씀과 모습을 보면서 ‘신앙인 의 믿음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무 엇이 다를까? 무엇이 그분에게 그렇게 살아갈 힘을 주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어머니께 말씀드렸고, 어머니께 서도 숨겨두셨던 빈첸시오회의 이야기를 해주셨습 니다. 그렇게 성당과의 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에는 조금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안에 있던 ‘왜’라는 물음표가 신학교에서 배우고 함께 지내면서 하나의 단어에서 문장으로 변하고 마 침표를 찍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표를 찍어갈수 록 신학으로 배웠던 하느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왜’라는 의문들이 길을 만들고 저의 하느님을 찾는 여정이 되어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