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도 우리의 가족이십니다
잠자는 성요셉상을 선물 받았습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아내 마리아와 아들 예수님을 잘 인도하신 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책상 위엔 잠자는 요셉상이 있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지향을 적어 그 밑 에 넣어 두신답니다. 그러면 잘 전구해 주시기에 맡겨드리 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께 청할 땐 꼭 영적인 것 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삶에 필요한 일상 적인 지향들은 신앙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하는 걸로 여기 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하느님을 우리의 ‘아빠’라고 하 면서도 가족처럼 친밀하게 대화하거나, 일상의 사소함을 시시콜콜하게 말씀드리고 상의하는 게 어려운 겁니다. 가 족이지만 편하고 스스럼없는 가족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가족은 늘 함께하는 것이라는데 이때 물리적인 차원은 물론, 정서적 심리적 관계적인 친밀함도 중요해 보입니다. 제 딸들은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상의한 적이 별로 없습 니다. ‘엄마도 힘든데 굳이 나까지 말해서 뭐 해. 폐 끼치지 말고 내 선에서 해결해야지.’라는 생각에 혼자 감당해 왔던 모양입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희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족을 외롭게 한 겁니다. 딸들은 번아웃이 오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만 하느님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집안 의 큰일, 큰 문제에 직면하다 보니, 작고 사소한 일들은 아 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거지요. 부모 자식 간에 힘든 감 정을 나눌만한 여유도 없었거니와 부모에게 폐 끼치지 않 고 알아서 자기를 책임져야 했으니까요. 이른바 각자도생, 스스로 살아남은 서바이벌(생존형) 가족이었던 겁니다.
가족이 서로를 공감해 주며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 려운지요. 주님과 맺는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주님께 가져가서 도우심을 청하고, 힘 들 때만이 아닌 기쁘고 편안할 때도 항상 주님을 찾고 불 러보는 것 역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여 저희 가족은 사 소한 일에도 관심을 보이며, 몸과 마음은 편안한지 감정 상태는 괜찮은지 물어봐 주고 공감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훈련이 가정에서부터 이뤄지게 되면, 하느님과 맺 는 관계도 부모 자식 간처럼 가깝고 친밀하고 다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께서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늘 강조하시며, “묵상기도란 나를 사랑하 시는 하느님께서 지금 내 앞에 계시다는 것을 믿고 단둘 이 자주 대화를 나누며, 친밀한 우정을 쌓는 것입니다.”(≪ 자서전≫ 8,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향 하 나를 더하여 잠자는 요셉상 아래에 써 두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하느님을 부모처럼 만나 사귀며, 시시콜콜한 일들 까지 함께 공유하고 상의하는 친밀한 사이가 되게 해달라 고 말이지요. 저희 모두는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 내는 영적 고아가 아닌,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분의 살가운 자녀들입니다. 하느님도 우리의 가족이십니 다. 이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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