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심판’과 ‘구원’ | 김용태 마태오 신부님(사회복음화국장)

松竹/김철이 2024. 3. 11. 10:00

‘심판’과 ‘구원’

 

                                                            김용태 마태오 신부님(사회복음화국장)

 

 

“밥 안 먹어요!”

어려서 심통을 부릴 때 툭하면 부모님께 했던 말이다. 내가 밥을 안 먹 으면 속상해 하실 부모 님의 마음을 볼모로 잡은 같잖은 협박이었다. 그 리고 그 협박의 결과는 대부분 부모님의 상심과 나의 배고픔으로 끝나 곤 했다. 어떤 때는 심통을 심하게 부리느라 하루 종일 굶기도 했는데 한밤중에 배고파 잠 못 이루면서 부모 님만 원망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철없던 시절의 일 이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참 미련한 짓이라는 생 각이 든다. 밥 안 먹어봤자 결국은 나만 손해 보는 일 아닌가! 더구나 그렇게 자초한 손해를 부모님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음이라니! 아무 잘못도 없는 부모님은 그로 인해 또 얼마나 상심하고 자책하셨을까!

 

그런데 어려서나 할 법한 철없고 미련한 이 행동을 나이를 먹어서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다름 아닌 하 느님을 향한 우리의 어리석음이다. 밥 안 먹겠다고 부 모님께 심통을 부리듯이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며 빛이 아닌 어둠 속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고는 어둠 속 에서의 춥고 배고프고 막막한 처지를 하느님 탓으로 돌 리며 하느님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거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느님의 ‘심판’은 하느님이 나에게 가하시는 형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해’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자초하여 스스로에게 가하는 형벌인 셈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 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 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 그 심판 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 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요한 3,17-20).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옥형벌’이란 것도 ‘지옥에 떨어 지기 싫어하는 죄인을 하느님이 억지로 떠미는 것’이 아니라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악인들이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지옥을 만들어 놓고는 스스로 기어들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구원이란 다른 게 아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 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랑은 고통 도 희생도 없는 달콤한 사랑이 아니라 십자가 위로 들 어 올려진 처절한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진정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하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