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누룩 | 연중의 삶 속에서

松竹/김철이 2024. 1. 20. 16:12

연중의 삶 속에서

 

 

다시금 연중 시기가 시작되었다. 성탄 대축일과 연 말연시 연휴의 들뜬 분위기들이 차분해지는 가운데 평범한 일상의 리듬으로 돌아와 다시 출근을 한다. 나 는 나의 출근길을 하이브리드 출근길이라 부른다. 자 동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경로가 시골 풍경 과 도시 풍경이 섞여있어서이다. 급할 때야 지름길로 잘 닦인 도로를 타기도 하지만, 여유가 있을 때면 샛길 들을 조금 둘러가면서 철철이 변하는 진짜 자연을 느 끼며, 그 자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 어서 좋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처럼 한갓진 길을 따라가던 중, 저만치 떨어진 어떤 인가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 노인이 대야를 들고 앞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마른 몸집에 오히려 대야가 무거 워 보여 약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 노인 이 수도꼭지 앞에서 쪼그리고 앉는 순간 나의 시선은 경탄과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나는 무릎이 좋지 않아 쪼그리고 앉는 것을 잘 못한다. 그런데 팔십은 족히 넘 어 보이는 그 노인은 아무 어려움 없이 수도가에 쪼그 리고 앉아 대야에 물을 받고 있지 않는가! 그 자신에게 는 매일매일의 하루를 시작하는 지극히 평범한 순간 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 노인이 한없이 빛나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 노인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자기보다 훨씬 젊은 누군가가 부러움과 경탄의 눈빛 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지나갔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자동차를 몰고 휘잉 지나가는 운전자를 보며 “좋은 시 절이다.”하고 나를 부러워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것 이 삶의 신비 아닐까? 습관적 일상으로 의식조차 못한 채 흘려 보내는 우리 삶의 순간의 파편들이 또 다른 누 군가에게는 매우 특별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그러나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는 그런 선물 들을 군데군데 심어 놓으신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통하여, 내가 너무나 당연히 여겨왔던, 심 지어는 있는 줄도 몰랐던 나의 그 무엇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선물이었음을 하나씩 둘씩 발견해 가면서 삶의 여정을 이어가도록 인도하시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우리 모든 삶의 순간들이 경이의 연속이 기도 하다. 때로는 날숨과 들숨마저 그분의 허락 안에 서 지속되어 온 것임을 문득 깨닫는 순간도 있지 않은 가.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평범한데 비범하고, 일상적 인데 거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