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의 울림
바이올린 연주가의 삶을 살고 있는 저에게는 지금껏 함 께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할 소울메이트가 있습니다. 바로 저의 짝꿍, 바이올린입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나무를 깎아서 울림통을 만들 고, 그 위에 현(string)을 묶어 활(bow)로 마찰을 일으켜 소리 를 내는 현악기입니다. 바이올린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울림통에 사용되는 나무인데요, 바로 ‘가문비나무’ 입니다.
가문비나무는 아주 높은 고지대에서 자랍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나무와 달리 위쪽 부분에만 가지가 자라는 조금 은 신기하게 생긴 나무입니다. 고지대의 어둡고 컴컴한 산 속에서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윗부분 의 가지들만 햇빛을 향해 뻗어나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빛을 전혀 보지 못하는 아래쪽 가지들은 스스로 땅으로 떨 어져 나갑니다.
이때 햇빛을 보지 못해서 떨어져 나간 가문비나무의 그 아래 부분이 신기하게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의 소재가 됩니다. 그 이유는 고지대의 척박한 환 경에서 몇백 년이 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가 자라는 동 안 나이테가 매우 촘촘해지고, 세포벽도 단단해지면서 악 기로서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문비나무가 자라는 환경은 척박함 그 자체입니다. 나 무 스스로 자기 몸의 일부를 잘라 버리며 생존해야 하는 처 절한 몸부림의 현장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전혀 다른 축 복으로 이어지고 새로움으로 탄생합니다. 고된 역경과 힘 겨운 고난 속에서 자란 단단한 밀도를 가진 나무만이 반짝 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으로 재탄생 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바이올린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된 가문비나무의 이야기는 저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 지 않는 순탄한 삶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설령 아무 일이 일 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제 마음은 평화롭지도 않습니다. 우 리는 수많은 굴곡과 아픔, 역경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햇빛 을 보지 못해 나뭇가지를 땅에 계속 떨구지만 빛을 향하여 위로 뻗어나가는 가문비나무처럼 말입니다.
신앙과 믿음은 이처럼 컴컴한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단단해지는 것 아닐까요? 여러 고난의 시간 속에서 주님의 빛에 오로지 의지하며 용기와 지혜를 얻을 때, 비로소 우리 도 바이올린과 같은 천상의 아름다운 울림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창세 15,1)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 있거나 당장 해결되지 않은 일들로 마음속이 답답하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오로지 주님 말씀의 빛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묵묵히 앞으로 한 걸 음, 한 걸음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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