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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30827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3. 8. 27. 07:51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30827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PWMjylaMwW0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1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구세주와 함께 세상을 살았던 우리들이기에 우리가 하느님께 들었던 그리고 또 조상들에게서 이어받은 모든 것은 예수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같은 이유 때문에 예수님과 우리의 거리를 느끼거나 또 벽을 세우기도 합니다. 오신 것은 감사하고 대단한 일이지만 그분과 우리는 참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답답하긴 하지만 또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요. 늘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여기에 대한 방법도 적극적으로 찾아내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예수님이 사람들의 반응을 궁금해하시는 듯 물으시는 장면에서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을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 알려줍니다. 이 소문들은 헤로데까지도 같은 내용을 듣게 된다는 것을 복음은 전해줍니다. 그런데 이 소문의 내용들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적어도 하느님이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다는 점과 또 동시에 예수님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짐작’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처럼 여겨지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과 연결을 시키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님이 바로 그리스도, 곧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대답이 일으킨 변화는 대단합니다. 그는 이 대답으로 시몬에서 베드로가 되고 열두 사도 중의 첫째자리에 서게 됩니다. 또한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하늘 나라의 열쇠가 그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시몬이 베드로가 된 것에 대해 우리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읽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멋진 대답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아버지의 뜻을 아셨고,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의 지점을 베드로라는 한 인물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 그에게 하느님 구원의 뜻이 기준으로 정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원은 여전히 하느님 만이 결정하시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맡기시고 다시는 이 결정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으로 그의 이름을 베드로, 곧 반석이라 지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편견은 거두지 못하는 우리지만 베드로를 기억하면서 주님의 뜻을 알아듣게 됩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담긴 뜻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마치 고해소에서 사죄경을 외울 때 사제가 ‘나도’로 시작하는 마지막 부분은 하느님께서 먼저 하시고 그래서 나도라는 뜻인 것처럼, 예수님이 베드로를 세우신 것은 당신의 판단 이전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아셨다는 뜻입니다. 

아들은 심판의 모든 권한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신의 권한이 어디에서 왔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가 먼저라는 것을 아셨기에 심판의 잣대를 내려놓고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기준이 당신을 가르치는 이들이 아닌 백성이었고 실수와 흠이 많았던 베드로에게 있다는 것을 그의 대답을 통해 알게 되신 겁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 열쇠의 주인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물입니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보다는 더 많이 부족함을 들켜버리는 순진함도 지닌 인물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주님의 수난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말한 인물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데도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거절했던 인물. 주님의 수난 후 가장 고향으로 내려가 그물을 손에 잡았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결국 하늘 나라 문 앞에 섰을 때, 그는 그 문을 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죄책감과 또 겸손을 말할지 모르지만 베드로에게 그 때의 문은 주님을 보고 싶은 그의 마음으로 결정하는 것이기에 자격을 논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문을 연다면 그만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 나라의 기준이 정해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베드로와 같은 인생들은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열 수 없다는 도덕적인 사람들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주님의 결정은 그런 것을 감안했다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베드로는 그럼에도 다 잊고 그 문을 충분히 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결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천국의 견고함이나 어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합니다. 그 열쇠를 주님이 들고 오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오늘 이 복음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 할 겁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것. 그것은 복음 속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로 주님의 뜻을 가리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 어떤 교황도 또 성직자들도 베드로가 지닌 그 순박함과 철부지 같은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품위를 지키고 수준을 갖추어 어떻게 해도 평신도 머리 위에 있어야 하는 겸손이 최고의 덕목인 듯 보이지만 그러나 첫 사람 베드로의 가치는 누구도 물리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어떤 대단한 인물도 이 베드로의 기준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7 "너는 베드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