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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지혜로운 사람들이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들,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2023 07 24

松竹/김철이 2023. 7. 24. 07:15

[지혜로운 사람들이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들],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2023 07 24,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NBulLp35qB0

 

 

 

가해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지혜로운 사람들이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라고 야단치십니다. ‘지혜’를 배우지 않으려고 하며 표징부터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마치 미사에서 말씀의 전례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표징은 성찬의 전례입니다. 성체를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은 도외시하며 성체 안에서 예수님만 만나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먼저 왜 하느님께서 성체가 되셔야 했는지를 이해해야 표징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으며 표징만 요구하는 세대는 그래서 절개 없고 악한 세대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들은 행복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압니다. 
누구든 자신 안에 가진 것으로 다른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없으면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지혜는 표징을 인식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표징이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주는 선물인데, 그 선물을 인식하려면 그 사람 자체가 자신을 죽이고 부활하는 삶이 참 행복이라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만이 표징을 알아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들일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성체 안에서 표징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일상은 죽음과 부활의 연속입니다. 그것이 행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1조 이상의 자수성가한 초대형 부자 21명의 공통된 습관 다섯 가지가 『억만장자 시크릿』에 나와 있습니다. 왜 하늘은 이들에게 그러한 축복을 주었을까요? 
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매일 하는 것은 일찍 일어나기, 운동(건강 유지), 독서, 명상, 규율 만들기입니다. 다른 책들도 다 이와 대동소이합니다. 더 들어가는 것이 있다면 이웃에 대한 배려, 혹은 선행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매일 자신을 죽이고 새로 태어나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이들은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발전을 거부합니다. 변하지 않으며 행복은 하려 합니다. 뱀의 소굴에서 천국을 느끼겠다는 심산입니다. 운동하는 노력이 없다면 건강할 수 없습니다. 운동은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시대에 상관없이 30%는 꾸준히 운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들은 규칙적인 운동을 합니다. 혹은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고 시간 낭비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부활임을 압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같은 계열의 정점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절개 없고 악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가진 것으로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죽음과 부활을 살고 있지 않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매일 기도를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선행을 해보십시오. 십자가가 완전한 표징으로 보이고 믿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것에 어느 정도 중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것을 찾게 됩니다. 
폴란드의 억만장자 ‘미하일 솔로포프’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먼저 억지로 싫어하는 일부터 한다고 합니다. 자신은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가 때문에 억지로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체계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제 안에 있는 게으름뱅이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 게으름뱅이는 계속 이렇게 투덜댑니다. ‘오늘은 너무 늦게 일어난 것 같아. 바빠서 시간이 없어. 몸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저는 그런 자신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안 돼. 너 자신을 속이지 마. 넌 그냥 게으름을 피우려는 것뿐이야.’ 그리고 운동을 하러 갑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결단력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지닌 사람들은 벌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을 준비가 된 이들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더라도 이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자신처럼 행복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이 100달러로 석 달 안에 100만 달러를 버는 내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10만 원으로 시작하여 석 달 안에 어떤 사람은 10억, 어떤 사람은 100억 가까지 불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무수한 어려움을 겪고 왜 이런 챌린지를 하는지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러나 이것을 보는 이들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세상 탓을 하며 불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건 그 사람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온갖 핑계를 댑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고생을 하는데도 우리는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성체를 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에서 지혜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 성체를 영해도 그 안에서 예수님을 볼 눈을 가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표징은 ‘요나’의 표징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속에서 사흘을 지내다가 나와 니네베 사람들에게 설교했더니 그들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땅속에서 사흘을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는데도 대부분 사람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표징은 보여줄 수 없습니다. 표징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거부하면 표징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방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찾았듯, 우리도 이 세상에서 지혜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은 지혜를 갖게 하고 지혜는 진리를 차지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