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30723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3. 7. 23. 08:36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3072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BP2lM5rDcDI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16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농민주일을 지낸 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그러하듯 우리와는 다른 농법을 보게 되는 복음이지만 우리는 아이러니 하게 지금 농촌의 상황 때문에 복음을 이해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농촌의 인력이 턱 없이 부족한 지금 가을 들녘에 버린 듯 수확을 포기한 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논에는 익어 고개를 숙인 벼와 큰 비와 바람에 쓰러져 열매를 제대로 낼 수 없었던 벼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논의 특징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가라지들이 크게 자라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듯 보이는 곳도 여럿입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농부는 여전히 좋은 씨를 밭에 뿌립니다. 땅을 가리지 않고 뿌리는 그 씨에는 모두 열매를 기대하는 희망이 동일하게 들어 있습니다.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그런데 오늘은 땅의 조건 말고 또 하나 그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등장합니다. 곧 ‘가라지’라고 부르는 풀씨가 뿌려집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 뽑아야 밀이든 벼든 잘 자랄텐데 복음 속 주인의 태도는 다릅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사랑을 듣지만 우리의 삶은 늘 그렇지 못한 삶이 함께 합니다. 개인의 사정도 그렇지만 공동체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이전에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어떻게 신자라면서...’라는 지적을 할 수도 있고 서로에게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을 경계하고 나무랄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이들도 무조건 무죄하거나 허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법’인 듯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가라지’라고 부를 이유는 없지만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은 주님의 말씀 속에 있는 그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만 모였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을 나무라고 있을 때 정작 우리도 나은 점이 없을 때는 힘도 빠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이 모든 것은 열매를 통해 드러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
 
그동안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입니다. 설사 그것이 가능할 정도로 신앙에서든 도덕적인 면에서건 기준을 가졌다 하더라도 곁에 있는 밀조차 다칠 것을 걱정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주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리 자신있다 하더라도 새겨 들어야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들 열매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으로 남을 죄짓게 하는 것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단 하나의 기준, 곧 ‘자신을 위해’ 사는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특징입니다. 같은 밭에 혹은 같은 논에 머물고 있으나 자신을 위해서 여기에 존재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영양을 빼앗고 자신을 위한 세력을 만들거나 자신을 꾸미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마련입니다. 

주님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까지 덧붙이시며 하느님이 뿌리신 좋은 씨에게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결실을 맺을 때까지 판단을 미루고 지켜보면 밀도 겨자씨도 모든 이를 위해 자신의 열매를 맺지만 가라지는 그렇지 못할 것이며 자신이 억울하다 말하며 행동할 것이라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이어 우리에게 새기라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0:00 오늘의 복음
3:13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