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기도가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은 이야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걸 지켜볼 때나 마트까지 걸어갈 때, 혹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나는 기 도한다. 마치 틈날 때마다 기도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 기도만을 위한 시간을 따로 내지 않는다 는 뜻이기도 하다. 묵주기도를 주로 하는 이유도, 정해진 횟수만큼 성모송을 바치는 건 다른 일을 하 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이건 기도가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됐다. ‘머 릿속으론 온통 딴 생각을 하면서 묵주알만 돌리는 건 성모님을 모욕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 각도 들었다. 이제는 제대로 된 기도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삶의 우선순위에서 기도를 뒷전으로 미 룰 순 없다. 그래서 일단 시간을 내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두 손에서 책과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성전에, 식탁 앞에, 소파에 앉아보았다. 빈손을 합장도 했다가 무릎에 올려놓기도 해봤지만 영 어색하다.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몰라서 불안했다. 기도는 말하는 게 아니라 듣는 거란 건 알아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지만 음성이 들려올 리는 없고, 잠깐의 침묵도 견디기 어려웠다. 분명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주님, 제가 당신의 말씀을 잘 알아듣게 해주세요.’ 하고 쉴 새 없이 주절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주님과 얼마나 서먹한 사이인지 새삼 깨닫는다. 친한 사람이랑 있을 땐 아무 말 안 해도 어색하지 않던데, 주님 앞 에선 침묵이 불편하니 말이다.
하루는 미사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가서 성전에 앉아있어 봤다. 그날의 독서랑 복음을 읽은 후 가 만히 눈을 감고 미사가 시작하길 기다렸다. 졸지 않을 정도로만 간간이 예수님께 말을 걸면서. 차분 하게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서인지 미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분심이 가득할 땐 미사 가 지루하더니 분심이 사라지자 미사가 순식간이다.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미사인데 나만을 위한 의 식이라는 착각이 든다. 성찬 전례가 펼쳐지는 탁자에서 예수님이 내게 직접 빵을 떼어주시는 것 같 다. 그러면서 나는 수동적인 상태가 되었다. 내가 자유롭게 뭔가를 청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하라 는 대로 기도하니 안심이 된다. 이런 구속과 복종이라면 얼마든지 하고 싶다.
사실 전부터 나는 주님과 주종관계에 있기를 원했는데, 주님께 복종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게 편하 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를 종이 아니라 친구로 불렀다고 하시지만 나는 그분과 동등한 관계가 될 마음이 없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까. 하지만 친구 가 아니라 종이라면 예수님과 같아지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진정한 친구는 한시도 마음이 서로를 떠 나지 않지만, 종들은 때때로 휴가를 얻어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는가. 나 역시 그런 일탈의 순간 을 기대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 서툰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주님, 제가 뭘 청해야 할지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던 기도가 ‘주님, 제 가 당신의 말을 듣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로 바뀌고, 다시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로 단순해졌다. 성령의 이끄심 속에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듣게 될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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