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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꿈을 결정해줘도 될까?/ 사순 제2주간 토요일/ 2023 03 11/ 전삼용 요셉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3. 3. 11. 00:00
 
자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꿈을 결정해줘도 될까?/ 사순 제2주간 토요일/ 2023 03 11/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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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사순 제2주간 토요일 – 자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꿈을 결정해줘도 될까?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는 그랜드슬램 대회 23회 우승(여자 단식), 올림픽 금메달 4회, WTA 투어 우승 73회, 더블스 23회 우승을 하였고,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Venus Williams)는 그랜드슬램 대회 7회 우승(여자 단식), 올림픽 금메달 4회, WTA 투어 우승 49회, 더블스 14회 우승을 하였습니다. 두 자매가 나란히 세계 랭킹 1위와 2위를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세레나 윌리엄스는 여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는 한 집안에서 두 명의 모차르트가 태어난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합니다.
이 두 위대한 자매를 키워낸 아버지가 리차드 윌리엄스입니다. 리처드는 두 자매가 태어나기 전부터 위대한 스포츠 스타로 만들 꿈을 가졌습니다. 자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래도 되는 걸까요? 심한 인종차별을 겪고 아버지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던 리처드는 자신은 그렇지 않겠다고 두 딸을 믿고 둘 다 최고의 선수로 키워냈습니다. 이는 인종차별에 막힌 흑인들에게 자신의 딸들이 희망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다고 역 인종차별자라 볼 수 없습니다. 두 자매가 승리를 거듭하며 자신들이 이긴 백인 선수들을 조롱하자 아버지는 엄하게 야단칩니다. 그리고 항상 겸손을 강조하고 두 자매가 경쟁하되 서로 가족임을 잊지 않도록 교육합니다.


두 자매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요? 자신들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테니스를 시킨 것에 후회하고 있을까요? 자신들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부와 명예, 그리고 모든 흑인들에게 희망이 된 두 자매는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꿈을 꾼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할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인생을 선택하여 살았다면 지금처럼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도 아버지에게 보이는 존경과 사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딸들을 이용하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자신처럼 힘들게만 살아야 할 것이라고 여기면 더 나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들이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테니스라고 정한 것은 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예가 세 자매를 모두 위대한 체스 그랜드마스터로 키운 아버지 라슬로 폴가의 예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들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꿈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뤄두고 싶습니다. 적어도 자녀들은 아버지의 믿음대로 큰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판단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믿워줘야 합니다. 그것이 방향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어쨌거나 자녀를 인도해줘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무시하면 자녀는 올바르게 클 수 없습니다. 이는 부모가 잘못된 표지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는 자녀를 판단하지 않고 자녀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잘못된 표지판이 있는 도로보다는 표지판 없는 도로가 낫지만, 표지판 없는 도로보다는 제대로 된 표지판이 있는 도로가 낫습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종교도 자녀들에게 자유를 주어 자녀가 커서 선택하게 하겠다는 부모의 입장에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믿음은 어쨌거나 자녀의 표지판입니다.


오늘은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의 비유 대상은 이 비유에 나오는 형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죄인들의 회개를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부모라면 자녀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자녀는 낮은 자존감으로 살 수밖에 없고 삶도 그 믿음대로 됩니다.
우리들도 돌아온 탕자를 정죄하지 않고 인정하시는 아버지를 본받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인정해주시는 분이시지 정죄하지 않습니다. 정죄하는 자는 그것을 통해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정죄하지 않음을 넘어서서 아버지처럼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부모가 자녀의 삶의 방향까지 정해주어야 하는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일찍 시작하면 그만큼 잇점이 있기에 빨리 정해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한국 남자 스노보드 이채운(17·군포 수리고) 학생이 한국 설상종목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선수들의 아버지는 어떨까요? 모두 자신보다 자녀가 더 나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빨리 캐치하여 자녀를 그 길로 가게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저는 ‘부모가 자녀의 미래까지 결정해 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표지판이 잘못된 것보다는 표지판이 있는 것이 낫고 – 이것은 자녀를 심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 또 남들처럼 똑같이 공부시켜 경쟁시키기 보다는 더 명확한 표지판이 되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아버지의 역할은 판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