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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화를 참는 연습을 하면 화 나는 횟수가 줄어들까?/ 사순 제1주간 금요일/ 2023 03 03

松竹/김철이 2023. 3. 3. 00:05

화를 참는 연습을 하면 화 나는 횟수가 줄어들까?/ 사순 제1주간 금요일/ 2023 03 03/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MfOJODL5ILo

 

 

2023년 가해 사순 제1주간 금요일 – 화를 참는 연습을 하면 화 나는 횟수가 줄어들까?

 

한 번 화를 내서 주위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열 번 잘 해 줘도 한 번 화를 낸 것을 기억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모든 인간의 존재방식입니다. 그러니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와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자녀와 연을 끊고 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들은 물론이요 손주들도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화를 한 번도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많은 세상의 가르침은 숫자를 세어라, 화가 나는 이유를 종이에 적어라 하는 식으로 연습을 하면 화가 누그러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치유책이 아닙니다. 화는 사실 밖으로 내지 않고 참더라도 화를 낸것처럼 몸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화 자체가 생겨나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가 어디에서 생기는지 알아야 합니다. 화는 ‘마음’에서 올라옵니다. 그러니 마음을 고치면 됩니다. 마음을 고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화가 안 나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마음은 누구에게 받는 것일까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받습니다. 아이들은 당연이 부모입니다. 특별히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을 자녀에게 주는 존재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 헌팅(맷 데이먼)은 어렵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윌은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던 중, 어머니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가출해버렸습니다. 그 후 윌은 사실상 무가족 상태에서 자랐으며, 어릴 적 상처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분노로 자리잡았습니다. 자기 또래의 다른 이들이 사랑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과는 너무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좋아서 수학을 잘 하지만 그는 그 능력으로 모든 이들을 조롱합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윌을 도와주는 사람은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암스)라는 심리학 교수입니다. 그는 모든 이를 조롱하는 그를 진정으로 치유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책하지 말라고 그를 안아줍니다. 이 영화에서 윌의 아버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윌이 숀을 아버지로 받아들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숀의 마음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숀의 말대로 화가 나서 떠나보낸 여인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영화의 제목이 “좋은 의지 사냥”인 것은 매우 특별합니다. 주인공 이름이 윌인 것도 있겠지만, 삶을 위한 좋은 의지는 내가 찾는다는 뜻입니다. 윌은 그 마음을 숀에게서 찾았습니다. 숀을 사랑하게 되자 그의 마음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장착하니 화가 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화가 나는 이유는 태어날 때의 생존만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바꿔줄 대상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아버지로 인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됩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기요사키는 가난한 생물학적 아버지보다는 친구의 아버지인 부자 아빠를 진정한 자신의 아버지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그의 삶의 방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친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친구 아버지의 모습을 지닌 사업가가 됩니다. 누군가를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으로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외적으로 부모를 닮은 것은 너무 쉽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매를 맞아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희에게 매를 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결혼하여 자녀를 때를 수 있을까요? 이는 이율배반적 행동이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부모를 증명하며 부모를 계시하며 삽니다. 그렇지만 그런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떨까요? 화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녀와 등을 지고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사는데 형제에게 화를 낼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을 내지 않으십니다. 화를 내야 하실 때도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죄를 없애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요한 12,47)

하느님은 심판하시는 마음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분을 아버지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분의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분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란치아노에서 성체가 사람의 심장 조직으로 변한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UN에서도 인정한 기적입니다. 왜 심장일까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체를 영할 때 그분의 마음을 받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마음이 아니라 행동만 따르려 했습니다. 그런 의로움으로는 하느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화 자체가 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양식 안에는 부모의 마음이 담깁니다. 그러니 성체를 영하는 우리는 화를 도무지 낼 수 없는 하느님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